회사 위기 가중시킨 회장님의 '갑질'

[집중취재] '갑질' 논란 무학 그리고 최재호 회장

등록 2016.01.24 18:21수정 2016.01.24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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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창원 마산회원구 봉암공단에 있는 소주 제조업체인 (주)무학.
경남 창원 마산회원구 봉암공단에 있는 소주 제조업체인 (주)무학.윤성효

경상남도 마산(현재 창원시)에 뿌리를 둔 대표적 향토기업 몽고식품과 (주)무학(아래 무학)이 오너의 '갑질' 논란에 휩싸여 잇따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해 연말 몽고식품 김만식 명예회장이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회적 지탄을 받은 데 이어, 지난 18일에는 무학 최재호 회장(56)이 자신의 수행 기사에게 여러 차례 폭언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몽고식품과 무학의 주 생산 품목은 각각 간장과 소주지만, 예로부터 물 좋은 곳으로 유명한 마산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몽고식품은 1905년 일본인 야마다 노부스께가 세운 야마다 장유양조장이, 무학은 역시 일본인에 의해 1929년 설립된 소화주류공업사를 전신으로 하고 있다.

김 명예회장과 최 회장, 두 사람 다 창업주였던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2세 경영인이라는 점, 갑질의 피해자가 운전기사라는 점도 닮았다.

하지만 두 기업이 지역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은 큰 차이가 있다. 지난 2014년 기준 몽고식품의 매출액은 440억 원 남짓이었지만, 같은 해 무학의 매출액은 2901억 원 이었다. 지역사회가 무학이 처한 상황에 촉각을 기울이는 이유다.

최 회장의 갑질 의혹이 전직 수행기사 A씨에 의해 폭로된 이후 무학의 주가는 연일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18일부터 나흘간 무학 주가는 20%가량 급락했다. 지난 해 3분기와 4분기 실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터져 나온 오너의 갑질 폭로가 회사의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모양새다.

1도 1사, '자도주 구입제도' 아래 기틀 다져온 무학


올해로 창립 87주년을 맞이하는 무학의 기틀을 세운 것은 최 회장의 아버지 최위승(83) 명예회장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청주제조업체인 산읍주조가 조선 진출을 목적으로 만들었던 소화주류 공업사는 해방 후 마산양조공업사로 상호가 변경됐다. 1965년 이 업체를 인수, 상호를 무학양조장으로 바꾸고 희석식 소주 '무학'을 생산하기 시작한 사람이 바로 최 명예회장이다.


사업은 탄탄일로를 걸었다. 1970년 3월 국세청은 세금을 많이 낸 법인 50개와 개인 30명의 명단을 발표했는데, 전년도(1969년) 8300만 원의 세금을 낸 최 명예회장은 고액 개인 납세자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1973년 정부는 주류의 품질저하 방지하고 업체의 난립으로 인한 과다 경쟁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전국에 산재한 주류업체들을 통폐합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경남지역에서는 무학양조장이 지역 내 35개 군소 소주 공장을 통폐합해 무학주조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도내 소주 생산을 독점했다.

한 개 도에 하나의 소주 업체만을 허용하고 해당 지역 주류 도매업자가 해당 지역 소주를 최소한 50% 이상 구입하도록 하는 '자도주 구입제도' 아래서 무학은 경남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면서 급성장했다. 1984년 공장을 신축해서 사세를 확장한 무학은 해외시장 개척에도 적극적으로 뛰어 들었다.

이후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연평균 10~15%의 증가세를 보이던 무학에게 위기가 닥쳤다. 자도주 구입제도가 1996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을 때다.

이후 수도권을 기반으로 한 하이트진로와 강원도를 기반으로 수도권까지 확장한 롯데칠성 등 대기업들이 지방 주류 회사들로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지역 소주회사는 자사가 속한 지역에서 시장 점유율이 50% 이하로 떨어졌다. 결국 전북을 기반으로 하고 있던 보배가 하이트진로로, 충북 기반의 충북소주는 롯데칠성으로 넘어갔다.

최재호 회장, 현장 제일주의 앞세워 공격적 경영

이런 위기 상황을 기회로 바꾼 사람이 바로 최 명예회장의 차남 최재호 회장이다. 1988년 기획실장으로 아버지 회사에 입사한 그는 1994년 대표이사가 되어 무학의 경영을 진두지휘했다. 최 회장은 현장 제일주의를 앞세워 공격적 경영을 펼쳤다.

무학은 소주시장에 저도수 바람을 일으켰다. 무학이 1995년 알코올 23%의 '화이트' 소주를 출시한 뒤로 대선주조가 그 뒤를 이으면서 부산·경남 지역의 주류시장에 일대 변화를 촉발시켰다. 이후 금복주와 진로가 저도수 소주를 내놓으면서 전국적인 저도수 소주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소주병의 색을 녹색으로 바꾸고 오프너가 있어야 하는 병마개 대신 돌려서 따는 방식으로 바꾼 것도 최 회장이었다. 화이트는 출시 1년 만에 1억병을 판매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당시 무학은 보증을 선 무학건설이 IMF로 무너지면서 큰 타격을 입고 부도 직전으로 내몰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워크아웃을 신청하고 경영개선에 노력한 결과 무학은 2년 반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할 수 있었다. 화이트의 성공에 힘입은 결과였다.

무학은 2006년 11월 알코올 16.9%의 저도수 소주 '좋은데이'를 출시하고 두 번째 승부수를 던졌다. 대선주조가 장악하고 있던 부산 시장을 적극 공략한 것이다. 대선주조가 생산하는 'C1'의 점유율이 한 때 93%에 달할 정도로 부산은 대선주조의 텃밭이었지만, 최 회장은 'C1 소주를 잡자'는 의미의 'C1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부산 시장에 뛰어 들었다.

최 회장은 직접 부산 시내의 술집을 찾아가 고객의 구두를 닦으며 '좋은데이' 판촉에 나섰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좋은데이'는 부산에서 2009년 50%의 점유율을, 2015년 상반기에는 75%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부산 시장 놓고 대선주조와 전면전

이 과정에서 부산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대선주조와는 전면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2012년 대선주조는 무학이 업소들에게 대선주조의 제품을 판매치 말라며 돈까지 돌렸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했고, 무학 역시 이에 맞서 허위사실 유포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런 와중에 무학의 소주병에서 이물질이 잇따라 발견되고 생수를 운반하는 차량으로 폐수를 몰래 운반 처리하려 한 사실이 당국에 적발되면서 부산지역 소비자단체들이 나서 무학을 비판하는 광고를 내걸었다. 당시 이들은 "좋은데이 소주를 드실라카면 이물질이나 파리가 있는지 단디 보이소"란 광고를 내고 무학을 압박했다.

무학은 지난 해 저도수 과일소주 바람을 타고 '좋은데이 컬러시리즈'를 출시해 수도권을 공략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도매상들을 상대로 불공정 거래를 벌이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좋은데이 컬러시리즈'가 인기를 끌자, 상대적으로 덜 팔리는 '좋은데이'를 여기에 끼워 팔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당시 무학은 "컬러시리즈 출시 후 며칠분이 하루에 다 나갈 정도로 판매량이 엄청나게 늘었다"며 "생산시설을 늘리고 있음에도 수요 대비 공급을 맞추지 못하는 상황"인 만큼 '끼워팔기'는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최 회장 리더십, '독선적'이라는 비판도

일각에선 '될 때까지 밀어 붙이는' 무학 특유의 공격적 마케팅이 최 회장의 캐릭터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ROTC 20기로 임관, 특전사에서 장교로 복무한 이력을 가진 최 회장은 직원들에게도 특전사 정신을 수시로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최 회장의 리더십이 독선적으로 비쳐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 

무학에서 일하다 퇴사한 한 직원은 "최 회장이 마산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협찬을 했는데, 전 직원을 모두 소집해 마라톤에 참가하도록 했다. 누가 (자발적으로) 마라톤 하러 서울에서 마산까지 내려가겠는가? 또 어느 휴일 날 마산 본사에 전직원을 불러다 무학 100년의 발자취를 주제로 분과 토의를 했는데, 직원이 5분 발표하면 최 회장이 15분을 야단쳤다"고 토로했다.

이 직원은 "분과 토의에서 '학자금 지원을 해주면 이직 안하고 회사도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오자 최 회장이 '내가 이 얘기는 8~9번 한 것 같다'면서 이렇게 말하더라. '소주에는 교육세가 붙는데 내가 학자금을 지원해주면 이중과세가 된다'고, 소주의 교육세는 소비자가 내는 것인데, 최 회장의 이런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무학이 처해 있는 위기 상황은 상당부분 이런 최 회장의 오너십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대규모 투자 손실이다.

지난 해 7월 2일 6만4790원까지 올라 정점을 찍었던 무학 주가는 계속 떨어져 지난 21일에는 3만95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6개월 남짓 만에 주가가 절반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주가가 급락한 것은 지난 해 여름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과일소주 열풍이 사그라든 점과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손실 등의 영향이 작용했다.

ELS 투자 실패, 회사 위기 가속화

무학이 본업인 소주사업에 전력하기보다 대규모 자금을 금융상품에 투자해 자산을 늘리고자 했던 것이 패착이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소주를 팔아서 어렵게 돈을 벌었는데 이를 대규모 금융투자로 잃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고 꼬집었다. 무학의 ELS투자가 최 회장의 의지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는 설도 증권가에서 돌고 있다.

무학은 최 회장 주도로 ELS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주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무학의 ELS 투자는 임직원과 재무팀, 최 회장이 참석해 투자 시기 및 상품을 결정하지만 사실상 이를 주도하는 인물이 바로 최 회장이라는 것이다.

지난 2012년 ELS 투자에 우려하는 일부 주주들에게 최 회장은 "지난해(2011년) 소주 매출 증가가 매우 고무적이었지만 ELS 수익도 굉장히 좋았다"면서 "앞으로 여러 주주들의 의견도 고려해 투자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듬해 3월 최 회장은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지만 회장직은 유지하면서 사회공헌활동과 해외사업을 주도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무학 관계자는 <머니투데이>에 "대표이사직에서는 물러났지만 ELS 투자와 관련된 전략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이 여전히 무학의 ELS 투자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대규모 투자 실패로 실적부진이 우려된 상황에서 터져 나온 최 회장의 갑질 논란은 무학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무학갑질 #최재호 회장 #좋은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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