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차산업의 성공 사례 : 당진 백산올미마을 한과 가공장 -
정기석
'가족농'을 중심에 세우자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선진농업국에서는 기업농과 가족농의 구분이나 대립이 없다고 한다. 거의 모든 농가가 가족농이기 때문이다. '소금과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의 파이스테나우(Faistenau) 지방의 홀러 농장도 요셉 클라우스호퍼(Joseph Klaushofer) 농장주 부부가 공동으로 꾸려가는 가족농장이다. 약 7ha의 농지에 닭 50마리, 젖소 7마리, 그리고 벌을 키우는 게 전부다. 그런데 젖소 70마리를 기르는 다른 농가보다 소득이 높다.
이 가족농의 비결은 농식품 가공 등 6차산업으로 부가가치를 높였기 때문이다. 소농으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농식품 가공품을 개발해 100% 직판으로 판매한 전략이 주효했다. 근본적으로 일반적인 농가와 콘텐츠와 프로그램이 다른 특별한 농가로 스스로 자리매김을 했다.
심지어 남편인 요셉씨는 겨울철 농한기에도 쉬지 않는다. 스스로 설계, 제작하는 양봉틀, 가구 등 목공제품을 제작해 판매하기도 한다. 농장주 요셉씨는 농장 안내를 하는 동안 입버릇처럼 되풀이해 힘을 주어 강조했다. 마치 자기 자신에게 주문을 거는 것처럼. "농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버틸 수 있는 다리를 찾아야 한다"고.
부인 브리기타씨도 부지런하기는 남편 요셉씨를 능가한다. 홀러 농장의 가공품 개발을 전담하는 연구원이자 공장장 역할을 맡고 있다. 어쩌면 남편보다 더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새로운 가공식품 연구와 개발을 위해 쉬지 않고 교육을 받고 인증을 받으러 다닌다. 그동안 50여 가지의 가공품을 개발했다. 그것도 정부의 지원은커녕 자기 돈과 시간을 투자해가면서.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 미에밍(Mieming)의 디스마스(Dismas)훈제생햄 맛 인증 농가도 전형적인 가족농이다. 20ha의 농장을 운영하는 농장주 마틴 알버(Martin Alber)씨는 직접 사육한 60여 마리의 돼지로 티롤 지방 전통방식의 수제 육가공품을 제조, 직판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농가 직판을 시작하고 2000년에 비로소 농가에 자가 도축장, 부분육 처리실 등을 마련해 훈제 생햄 등의 육가공품을 자체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작품을 만들듯 생산한 훈제 생햄은 오스트리아 최고 인증 지역농특산물에게 주어지는 '맛의 왕관(Gueness Krone)'을 수차례 수상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기업농도 아닌 일개 가족농 처지에 4성급 이상의 오스트리아 최고 수준의 호텔에 납품할 정도다.
농장주 마틴 알버씨는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한 육가공 분야 마이스터다. 마이스터는 농업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자격이 부여된다. 농장주 마틴씨의 아들 역시 가업을 잇기 위해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정규학교 과정 이외에도 농업마이스터시험, 티롤 농업회의소의 육가공, 마케팅 등 정기보수교육과정 등을 이수한 어엿한 농부 자격증 소지자다. 30여 년 전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낙농업을 물려받았듯이, 아버지 마틴씨로부터 농사라는 가업을 이어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전문 농업인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한국의 가족농은 1987년 180만호에서 2013년 110여만 호로 줄어들었다. 우리도 정부의 가족농 육성정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족농을 육성하기 위해 전업농을 중심으로 규모 확대를 촉진하고, 젊은 후계 가족농을 양성하며, 규모화나 전문화가 어려운 가족농은 협동화를 유도하겠다"는 가족농 육성정책은, 이명박 정부에 의해 "2012년까지 기업형 주업농 20만 명과 1만여 개의 농업법인을 육성하겠다"는 농업선진화법에 가렸다. 대다수 소규모 가족농은 정부의 관심대상에서 소외됐다. 그리고 전문화, 규모화된 기업농, 대농들과 경쟁하느라 점점 해체되고 있다.
2014년은 UN이 지정한 '가족농업의 해(International Year of Family Farming)'였다. UN도 가족농이 식량안보와 영양개선, 빈곤과 기아 극복, 환경과 생물다양성 보전, 지역경제 유지 등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국 93개국 전체 농가의 80%가 가족농인 것으로 밝혀졌다. 소규모로 가족들이, 가족노동을 주로 경영하고, 다양한 복합적 영농활동을 통해 전 지구적으로 '식량안보'와 '자연자원보호'를 선도하는 점을 가족농의 중요한 역할이자 가치로 평가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농업의 살길, 그리고 식량주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는 가족농이라 할 수 있다. 정글같은 세계자유무역협정 시대에 미국, 호주 등의 글로벌 메이저 농기업과 겨루겠다고 농지 집단화, 수출 기업화 등 규모의 경제를 추진하는 정책은 비현실적이고 불필요하다. 소규모의 건강한 가족농을 중심으로, 지역의 전통 특화자원에 기반을 둔 친환경 지역순환농업이 최선의 자구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