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민호 활동가(왼쪽)와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시형 활동가(오른쪽)가 '병신년'을 '붉은 원숭이해'로 바꿔 쓰자는 내용의 종이를 들고 있다.
대구인권시민기자단
- 현재 '장애인차별상담전화네트워크'(아래 '네트워크')에서 진행하고 있는 캠페인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캠페인과 관련한 앞으로의 계획은? 김(김시형): 지난해 12월에 서울에서 진행된 2차 민중총궐기대회에 참가하였고 대회장에서 '박근혜 병신년 정책평가'라는 어느 참가 단체가 준비한 홍보물을 보았는데 먼저 든 생각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이라고는 하지만 그 홍보물을 준비한 단체와 같은 생각으로 함께 변화를 외치는 장애인과 여성을 생각하지 않은, 더욱 심하게 이야기하면 없는 사람 취급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사진과 함께 소셜네트워크에 개인적인 생각을 담아 글을 올렸는데, 같은 문제의식으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이민호): 김시형 활동가의 글을 보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쯤 텔레비전을 보면서 매우 놀랐다. '무한도전'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서 그동안 바보캐릭터(?)로 인기를 모았던 정준하라는 방송인에게 "'병(丙)신(申)년(年)'은 정준하의 해"라고 이야기하며 웃는 장면이 나온 것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는 방송에서 '병(丙)신(申)년(年)'이라는 말을 문제의식 없이 그냥 웃음의 소재로 쓴다면, 앞으로 모두들 고민 없이 따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에 김시형 활동가를 만나서 캠페인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고 지난 1월 4일에 공식적으로 네트워크에 캠페인을 제안하여 시작하게 되었다.
김: 캠페인은 '병(丙)신(申)년(年)'이라는 말 대신 '붉은 원숭이해'로 바꿔 쓰자는 말이 적힌 종이를 들고 사진을 찍은 후 개인 소셜네트워크(SNS)에 올리는 방법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네트워크 회원들에게 캠페인의 취지를 설명하고 참여를 부탁했다. 그리고 각 회원단체 홈페이지에도 참여방식을 안내하여 일반회원과 홈페이지를 찾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시작은 그렇게 하였는데 언제까지 할지는 따로 정하지 않았다. 1월 15일 현재 대구지역의 청년좌파, 평화캠프 등의 활동가들과 서울 등에서 활동 중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 등 40여명이 참여하였다.
이: 장애인활동보조를 하는 분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지역 인터넷신문인 뉴스민의 김규현 기자도 함께 해줬다. 그리고 장애인 인권단체와는 평소 인연이 없던 간호사인 처형에게 캠페인의 취지와 방법을 안내하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얼마 후 처형의 SNS에 사진이 올라와 놀랍고 고마웠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캠페인에 참여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캠페인은 계속 진행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네트워크는 이 캠페인에서 그치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병(丙)신(申)년(年)'을 악용하는 사례를 찾아 바꿔나갈 생각이다. 특정 인터넷사이트 이용자가 악용하고 있다면 해당 사이트에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할 생각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인에 대한 괴롭힘 등으로 진정을 접수할 계획도 있다.
김시형 활동가와 이민호 활동가는 장애인이다. 장애가 있는 두 명의 활동가에게 '병신'에 대한 기억을 물었다. 김: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가 병신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대학교 1학년 때다. 여러 선배들과 장애인 인권을 위하여 막 활동을 시작할 때였다. 당시 같은 학교 학생들이던 우리는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였고, 저녁 때 모여 앉아 술을 한잔하면서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는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있던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병신아"라고 옆에 있던 친구에게 말했다.
그 말에는 어떤 불편함도 어떤 모멸감도 담겨져 있지 않았다. 그냥 무척 친한 친구사이라는 표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지금 내가 활동하고 있는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노금호 소장이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듯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이제 우리끼리도 '병신'이라는 말은 쓰지 말고 '장애인'이라고 하자." 그게 전부였다. 나는 그날 난생 처음 들은 그 말을 그 후로 오랫동안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요즘은 교육을 다니면서 쓰지 말아야 할 말이라며 '불구자', '병신'이라는 단어를 소리 내어 말하고 있다.(웃음)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특수학교를 다녔을 때는 물론 일반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듣지 못했던 말이다. 고등학교 때는 '애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애자는 '장애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인 동시에 누군가를 놀림거리로 만드는 말이다.
이: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엉덩이를 몽둥이로 때리면서 "잘못 맞으면 허리 '병신' 된다. 똑바로 맞아라!"고 이야기를 할 때 '병신'이라는 말과 그 의미를 어렴풋이 알았다. 그 때 나는 '병신'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몸이 아프거나 불편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했다(난 건강했고, 당시에는 크게 불편함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병신'이 장애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라는 것을 안 것은 장애인인권활동을 시작하고부터였다. 하지만 그 때도 여느 친구들처럼 친한 친구끼리는 '병신'이라는 말을 쓰곤 했는데, 어느 순간 우리부터 쓰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고 그 후로는 쓰지 않고 있다. 김시형 활동가처럼 장애인 인권교육을 가면 쓰지 말아야 할 말로 '병신'이라는 말을 알려주는데, 교육이 끝난 후 교실문을 열고 복도로 뛰어가며 앞서 가는 친구를 '병신아'라고 부르는 학생들을 종종 보게 된다. 언어습관이라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끝으로 캠페인을 하면서 드는 생각, 개인적인 바람을 물었다. 이: 나도 '욕'을 한다. 하지만 그 상대를 눈앞에 두고 또는 그 상대가 보고, 듣게는 하지 않는다. 욕이라는 것의 다양한 의미나 긍정적인 측면(?)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수가 특정 소수집단을 낮잡아 부르는 것에서 시작한 욕은 절대로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어떤 사람들은 왜 '병(丙)신(申)년(年)'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장애인과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라고 해석하고 느끼는가?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더욱 일반적인 의미의 '병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병(丙)신(申)년(年)'을 말하면서 병신(病身)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면 소리내어 '병신(病身)'을 이야기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장애인의 자격지심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병(丙)신(申)년(年)'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라서가 아니라 소수집단에 대한 다수의 횡포이기 때문에 우리는 변화를 바라는 것이다. 청소년이든, 외국인이든, 남성이든, 어떤 상황 속 그 소수집단을 비하하는 말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또 캠페인을 시작할 것이다. 누군가 들어 상처받는 말인데 바꿔 쓸 수 있는 표현이 있다면 바꾸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김: 2016년이 가까워 오기 전까지 '병신'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쓰는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다. 평소 많은 사람들이 쓰지만 또 모두가 쓰지 않는 말이었다. 물론 특수교육과 오리엔테이션이나 MT 때 학과 교수나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장애인 흉내를 시키고 웃고 즐겼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또 친구들끼리 장애인 흉내를 내면서 놀기도 하고, 인터넷 방송에서 재미를 위해 장애인 흉내를 내고, 조금 별난 행동을 하면 '장애인이야?'라는 말을 쉽게 내뱉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것은 모두가 알지만 가려진 이야기였고, 부러 드러내지 않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병(丙)신(申)년(年)'이 공중파 방송의 웃음소재가 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독 유행에 민감한 대한민국에서 이런 상황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비난과 비판에도 캠페인을 이어갈 것이고, 지켜볼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는 말을 재미로 이용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재미를 즐기는 사회구조 또한 매우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폭력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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