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상에서 내려다본 워털루 풍경동서남북 어딜 내려다봐도 지평선뿐이다. 불과 40여 미터의 높이인데도 왼쪽 끝으로 어렴풋이 북해 바다가 보일 정도로 넓은 벌판이다.
서부원
참혹했던 전투의 현장에 생뚱맞게 왜 언덕을 돋우고 그 위에 사자상을 세웠을까. 언뜻 보면 새 것 같은 사자의 언덕은 워털루 전투가 끝나고 10여 년 뒤에 조성한 유서 깊은 기념물이라고 한다. 아군과 적군 구분 없이 당시 죽음을 당한 수만 명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쌓았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면 언덕이 아니라 가묘일지언정 무덤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사자상도 전투 당시 포획한 프랑스 군대의 무기들을 녹여서 만든 것이라고 하니, 사자의 언덕 자체가 반전과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심장한 유적이라 할 수 있겠다. 사자는 패장 나폴레옹을 상징한다. 그의 탄생일의 별자리가 사자 자리여서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보다 그가 권좌에 오르며 대중 앞에서 포효했다는 이 말에 기인한 것이라는 게 더 설득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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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사자가 깨어나면, 온 세상이 두려움에 떨 것이다.'말하자면, 적이었을지언정 패장에게 예우를 표하는 동시에, 전쟁으로 인한 참혹한 죽음들을 잊어선 안 된다는 걸 중의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 곧, 사자의 언덕인 셈이다. 또, 이 때문에 워털루 전투의 주인공 역시 승자인 웰링턴이 아니라 패자인 나폴레옹으로 후세에게 기억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사자의 언덕에서 승자 웰링턴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 간절한 바람 때문인지, 사자의 언덕에 올라서서 주위를 내려다보면 200여 년 전 이곳이 희대의 전쟁터였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목가적인 풍광이라 해야 어울릴 만큼 평화롭다. 총과 칼이 부딪치고 피와 살이 튀기던 붉은 전쟁터는 지금 소와 양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초록의 들판으로 변했다.
브뤼셀로 되돌아가는 길, 버스를 타고 멀리 워털루역으로 향했다. 올 때는 마음씨 좋은 승무원을 만나 추가 요금을 내지 않았지만, 어차피 왕복 승차권엔 워털루라고 찍혀 있으니 그리로 갈 수밖에. 물론, 지금 작은 마을 워털루는 과거 워털루 전투를 어떻게 담아내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우리네 통영과 여수가 충무공 이순신의 도시이듯, 워털루도 그럴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워털루는 나폴레옹에 무심했다. 역사 유적은 고사하고 한복판에 서 있는 높은 첨탑의 성당을 제외하면 세월의 더께가 앉은 건물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최근에 조성된 신도시라 해야 맞을 만큼 도시 분위기가 새뜻했다. 인터넷 검색 창에 워털루를 입력하면, 이곳이 아닌 영국 런던의 워털루역이나 미국의 워털루 카운티만 뜰 뿐 원조 격인 이곳을 찾을 수 없는 게 이해가 됐다.
우리네 시골 간이역 같은 워털루역에서 브뤼셀 행 기차를 기다렸다. 반대 방향 플랫폼을 보니 기차에서 막 내린 배낭을 둘러멘 몇몇 여행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모르긴 해도 우리처럼 워털루 전투의 현장을 찾아가는 길일 것이다. 순간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올 때 기차 승무원이 건넨 이 말을.
"'워털루'로 가려면 '워털루'에서 내려선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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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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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무릎꿇은 '워털루 전투' 현장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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