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앞두고 택배 상하차·분류 작업이 한창인 한 택배회사의 물류터미널
선대식
터미널 안에는 컨베이어 벨트가 롤러코스터처럼 1~3층 곳곳으로 이어져 있다. 1층 벽에는 택배를 내리거나 싣기 위해 컨테이너나 화물차 짐칸과 연결되는 문이 줄지어 설치돼있다. 내가 배치된 곳은 5번 라인. 문이 열리자, 쏟아질 것 같은 수많은 택배 상자와 마주했다. 할 말을 잊었다. 나와 함께 일하는 대학생 김준수(가명)씨도 마찬가지였다.
작업반장의 지시로 작업이 시작됐다. 다행히 소형 택배 상자나 조그마한 의류가 든 택배 봉투였다. 초반에 이를 컨베이어 벨트에 옮기는 건 크게 힘들지 않았다. 문제는 수량이 수천 개나 된다는 거다. 최소 수백 번이나 허리를 굽혔다 펴야 했다. 영하의 날씨인데도 땀이 나 파카를 벗었다.
마지막 택배 상자를 컨베이어 벨트에 싣고 나니, 허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작업반장이 "담배 한 대 피우고 오라"고 했다. 휴게실에서 시간을 확인하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준수씨는 내게 "정말 힘드네요"라는 말을 건넸다. 나는 "힘드네요"라고 답했지만, 참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휴게실 의자에 앉은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여기서 뭐 해? 왜 안 와"라는 호통이 들렸다. 또 다른 작업반장이다. 5번 라인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탓에 택배 분류 일을 맡았다. 업무량이 많지 않았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때, 다시 호통이 들렸다.
"야. 내 말이 안 들려! 여기로 안 와?"5번 라인엔 화장품 상자 더미가 내 키보다 더 높게 쌓여있었다. 손을 뻗어야 꼭대기에 있는 상자에 손이 닿았다. 그렇게 수천 개의 상자를 날랐다. 팔다리는 내 의지대로 잘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중도 포기를 막기 위한 노하우를 익힐 수 있었다. 고통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머리를 비우는 것이다. 무념무상. 기계처럼 일했다.
[새벽 2시]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두 번째 택배 하차 작업을 끝냈다. 새벽 2시였다. 파김치가 됐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또한 땀이 식으면서 몸이 으슬으슬 추워졌다.
다시 담배 한 대 피울 정도의 쉬는 시간, 준수씨와 몇 마디 나눌 수 있었다. 준수씨는 2주 뒤에 입대한다. 그는 친구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초단기 알바인 명절 앞 택배 상하차에 나섰다고 했다. 그는 원래 이틀 일하기로 회사에 얘기해놨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이렇게 힘든 일인데, 제가 왜 이틀 일한다고 했을까요."사실 내가 이날 하루 택배 상하차 알바를 하는 건, 청년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대다수 청년은 연애·결혼 등 많은 걸 포기하면서 청춘을 보내고 있다. '헬조선'이라 불릴 정도로 청년들에게 가혹한 대한민국에서도 지옥의 알바를 선택하는 이들의 사연은 남다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알바생들과 얘기를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각 라인은 따로 작업한다. 서로 작업시간이 다르니 쉬는 시간도 다르다. 사실 쉬는 시간이 겹쳐도, 대화를 나눌 정도의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