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갑질' 또 없다... "전세금 못 줘" 통보한 집주인

전세보증금은 돌려받았지만, 개운치 않은 결말

등록 2016.02.11 20:29수정 2016.02.11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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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2월 초가 되었는데 집주인한테 전혀 연락이 없었고 계약 만료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집주인을 찾아갔으나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이미 새로운 집에 계약한 상황이라서 난감했다."
"2015년 12월 초가 되었는데 집주인한테 전혀 연락이 없었고 계약 만료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집주인을 찾아갔으나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이미 새로운 집에 계약한 상황이라서 난감했다."sxc

"돈이 있어도 못 해줘요. 방 빼서 나가요."


전세 계약 만기를 알리면서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했더니, 집주인이 보낸 문자다. 화가 나는 걸 참고 마음을 진정하려고 크게 숨을 쉬기를 몇 번을 해야 했다. 누군가는 직장에서 해고됐다는 내용을 문자로 받았다는데, 나는 황당하게도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도 않은 채 내쫓기게 문자로 통보받은 것이다.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다.

상황은 대략 이렇다. 여기로 2013년 12월 초에 이사오면서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3층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집주인은 자기네들도 반지하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면서 친절하게 대해줬다. 집주인과 마주칠 일은 한 달에 한 번 수도세를 낼 때 정도였다.

2년의 전세 계약 만료일이 다가오면서 이사를 할지 고민을 시작했다. 근처에 햇볕 잘 드는 집이 사는 곳과 같은 금액의 전세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사하기로 마음 먹었다. 집주인한테도 그 사실을 알렸다. 집주인은 "다른 사람이 전세 계약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전세금을 줄 수 없다"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집으로 돌아와 관련 자료를 찾아봤다. 보통은 이사 3개월 전에 통지해야 하나 법적으로는 1개월 전에 해도 문제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집주인에게 해당 사실을 알리고 전세 보증금을 계약 만료일에 돌려달라고 했다. 집주인은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완강하게 답변했다. 꼭 돌려달라는 말을 하긴 했으나 찝찝한 생각이 들었다.

전세 보증금 관련 집주인과 주고 받은 문자 내용1 집주인은 전세 계약이 만료되었는데도 '돈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들은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해서 그걸 당장 뺄 수 없다는 속사정도 이야기했다.
전세 보증금 관련 집주인과 주고 받은 문자 내용1집주인은 전세 계약이 만료되었는데도 '돈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들은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해서 그걸 당장 뺄 수 없다는 속사정도 이야기했다.정인곤

이미 새 집 계약했는데... "전세금 못 준다"는 말만


2015년 12월 초가 됐는데, 집주인한테 전혀 연락이 없었다. 계약 만료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집주인을 찾아갔으나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미 새로운 집을 계약한 상황이라서 난감했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니 이와 비슷한 사례가 매우 많았다. 대부분 '법적으로 해결하는 게 제일 낫다'는 답변이 많았다. 공인중개사 일을 하는 지인에 물어봤더니 '법적 대응 준비를 하되 집주인과 대화로 풀어가는 게 낫겠다'는 조언을 들었다. 집주인을 찾아가기도 하고 전화로 연락하기도 했다.


'내용증명' 서류와 '임차권 등기 신청' 준비 등을 해가면서 집주인과 소통했다. 부탁하는 어조로 전세 보증금 돌려줄 수 있는 날짜를 약속해달라고 했다. 집주인은 귀찮았는지 1월 말에는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1월 말 이틀 전에 주인으로부터 '돈이 없다, 3월 중순에나 가능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약속을 지키라는 말에 집주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상황이 꼬이다 보니 후회가 고개를 들었다. 왜 처음부터 대출받아 조금 더 넓은 집에서 시작하지 않았던가. 신혼집을 알아볼 때 대출받지 않고 형편에 맞게 집을 구해보자는 원칙이 있었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두 명이 만나서 결혼했으니 모아둔 돈이 많을 리가 없었다.

햇볕이 잘 들지 않고 집이 좁았지만 두 사람이 살기에는 괜찮았다. 하지만 가족 계획이 생기자 이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처음부터 법적 대응을 하지 않았던가. 대학 때부터 살아온 지역이었고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해왔던 마을이었다. 시민사회 활동을 해오면서 법적 대응의 한계와 부정적 측면을 알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과 마을공동체 운동을 여러 해 전부터 해왔고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에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했었다. 나는 법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다.

문자 한 통으로 쉽게 약속을 뒤엎는 사람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연락을 주겠다는 사람들이 오후 11시가 되도록 연락이 없었다. 주인집을 찾아갔다가 이번엔 집주인의 딸을 상대해야 했다. 졸지에 늦은 밤에 행패 부리는 사람이 돼버렸다.

전세 보증금 관련 집주인과 주고 받은 문자 내용2 집주인은 1월 말에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겠다던 약속을 쉽게 번복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책임을 세입자인 나에게 돌렸다.
전세 보증금 관련 집주인과 주고 받은 문자 내용2집주인은 1월 말에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겠다던 약속을 쉽게 번복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책임을 세입자인 나에게 돌렸다.정인곤

결국 돌려받은 전세금, 100만 원이 부족했다

다음날 오전, 법적 대응을 위해 착잡한 마음으로 법원에 가던 길이었다. 집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계속 없어서 못 주겠다던 돈을 한나절 만에 마련해서 통장으로 입금해줬다. 그러나 보증금에서 100만 원을 뺀 금액이 들어왔다. 그러면서 집 상태를 완전히 복구해놓으면 주겠단다. 이사 당시 낡은 후드와 싱크대를 떼어내고 절반씩 부담해서 새 싱크대를 설치했었는데 집주인이 후드를 복구하라고 했다. 결국 후드를 설치했더니 이번엔 싱크대 상부장도 복구하라면서 '그래야 나머지 돈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겪을 수 있다면서 스스로 위로했다. 풀리지 않는 물음 중 하나는 집주인의 태도였다. 집주인은 사건의 초반부터 최근까지 일관되게 모든 문제의 원인을 세입자한테 돌리고 있었다. 새로운 전세 계약자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전세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한 게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1월 말에 보증금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3월 중순에 주겠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건 새로운 전세 계약자가 나타나면 주겠다는 태도였다. 임차인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임대인의 관점에서 임차인에게 책임과 의무를 전가하는 셈이다. 집주인은 "법대로 하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는데, 법조차도 임대인에 유리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한 마을에서 벌써 15여 년을 살아왔고 마을공동체 운동을 여러 해 전부터 해왔다. 시민사회 운동도 마을공동체에 토대를 둬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런데 운동이나 사업의 장이 아닌 개인적이고 일상적 장에서는 '마을'이 불가능한 건 아닌지 회의감이 든다. 질문을 바꿔 일상적인 장에서 마을공동체를 어떻게 시작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상대편의 입장에 조금만 더 관대하게 존중하고 상식 수준에서 조율이 가능한 경험을 조금씩 쌓아가야 하지 않을까.
#전세금 #임차인 #마을공동체 #마을공동체 사업 #임차권 등기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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