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 직무유기 성립 어렵다" 교육부도 인정?

[발굴] 누리 과정 예산 관련 교육부 법률 검토 문서 발견... '과잉 수사' 논란

등록 2016.02.23 20:51수정 2016.02.2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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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가 만든 법률검토 문서.
교육부가 만든 법률검토 문서. 윤근혁

교육부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시도 교육감과 관련 "직무유기죄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법률검토 문서를 만든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검찰이 시도교육감에 대한 직무유기죄 혐의에 대해 수사를 벌이는 가운데 이 같은 정부 문서가 발견되어 '과잉 수사'라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2개 부서가 공동으로 법률 검토 뒤 작성

23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정진후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건네받은 '직무유기 관련 검토'란 제목의 문서를 분석했다. 그 결과, 교육부가 누리과정 관련 교육감들에게 사실상 '직무유기죄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교육부에서 작성한 이 문서는 '검토의견' 항목에서 "(교육감들의 누리과정 예산 미편성이) 형식상 직무유기죄의 구성 요건에 해당된다고 보인다"면서도 다음처럼 적었다.

"그러나, 일단 직무 집행의 의사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한 경우에는 직무 집행의 내용이 위법한 것으로 평가된다는 점만으로 직무유기죄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판례가 있음."

해당 문서는 교육부의 누리과정 관련 2개 부서가 교육부에 근무하는 변호사들에게 법률 검토를 받은 뒤 지난 1월에 공동으로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에 있는 여러 명의 변호사에게 검토를 받았지만, 몇 명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서 내용은 이준식 교육부 장관 등 정부 인사에게도 보고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1월 28일 서울에 있는 한 어린이집을 방문해 간담회를 열고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시도 교육감들을 정면 비판하기도 했다.


이 문서에는 교육부의 징계 요구를 거부한 김승환 전북도 교육감에 대한 대법원의 '직무유기죄' 무죄 판결문이 '관련 판례'로 첨부되어 있다. 앞서 교육부는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에 대한 징계를 미룬 김 교육감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판결문(2013도229)에서 "직무유기는 공무원이 법령 등에 의한 추상적 성실의무를 태만히 하는 일체의 경우에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판결문에서는 "일단 자신의 직무를 수행한 경우에는 직무집행의 내용이 위법한 것으로 평가된다는 점만으로 직무유기죄의 성립을 인정할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현재 검찰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서울, 광주, 경기, 강원 교육감들에 대한 직무유기 수사에 뛰어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번 수사는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산하 모임이 "지방재정법 시행령 제39조에 따라 누리과정 예산은 시도교육청의 의무지출 경비이므로 교육감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책임이 있다"며 '직무유기'로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이들이 고발한 교육감은 서울, 광주, 경기, 강원 등 6개 지역 교육감이다.

감사원도 지난 3일부터 서울·경기·강원·광주·전남·전북·세종 등 7개 교육청에 대한 누리과정 예산 편성 관련 감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 1월 8일 어린이집총연합회 소속 500여 명으로부터 공익감사가 청구되자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교육부 법률 검토 문서가 드러남에 따라 논란이 예상된다.

"직무유기 아니라고 인정한 것", 교육부 "직무유기죄 판단 아냐"

정진후 의원은 "내려보내지도 않은 누리 과정 예산을 '빚덩이'에 오른 교육청들이 편성할 수도 없으며, 그나마 대구교육청은 학교를 팔아 관련 예산을 편성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이번 문서는 시도 교육감들의 누리과정 예산 미편성 결정이 직무유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교육부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승환 전북도 교육감도 "정부가 시도 교육감들에 대해 행정적·재정적 압박에 이어 '직무유기' 수사와 감사로 법적 압박까지 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교육부 문서는 정부의 행동이 바로 검찰권과 감사권의 과잉 행사란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해당 문서는 시도 교육감들이 어린이집 관련 단체에서 고발 당한 상태라 '직무유기 성립 요건'을 알아보려고 작성된 것에 불과하다"면서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이 아닌 교육부가 직무유기죄에 대해 판단할 수도 없고 판단한 것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냈습니다.
#누리과정 #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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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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