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은 국민사찰법이다."
장성렬
테러방지법을 저지하기 위해 80시간 넘게 진행된 야당의 필리버스터로 국회 안이 시끄러운 가운데, 국회 바깥에서는 사찰 피해자들이 증언을 쏟아내며 테러방지법을 막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정보기관의 사찰과 감시가 일상화될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국민들은 구체적인 내용을 실감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지난 26일의 '테러방지법은 국민사찰법이다'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은 사찰 피해사례들을 직접 거론하며 국민들에게 테러방지법의 구체적인 위협을 알렸다.
대학 구조조정 반대 대학생도 사찰먼저 인하대학교에서 대학구조조정 사업 반대 실천단 활동을 했던 이지원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씨는 경찰이 페이스북을 통해 전화번호를 캐낸 후, 프라임사업(산업연계교육 활성화 선도사업)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는 명목으로 전화를 걸어와 불법 사찰을 벌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공무집행 중이냐는 물음에 분명히 아니라고 밝혔으며, 단순히 정부 정책을 조사,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고 답했다. 이씨는 이렇듯 공식적일 수 없는 업무를 지시한 주체가 누구이며 "프라임 사업 반대자를 색출해 연락, 프라임 사업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으로 어떤 기대효과를 예상했느냐"고 비판했다.
이 씨는 자신이 배워온 교과서가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규정했고, 국민은 개인의 양심에 따라 사상과 행동의 자유를 가진다고 말했음에도 며칠 전 받은 한 통의 전화로 그 믿음이 무너져 내렸다고 말했다.
또한 국가기관이 자신의 사상과 행동을 감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알려주며 두려움과 공포를 심는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 씨는 나아가 테러방지법이 국민사찰법에 다름 아니며, 사찰의 주체가 누구이든 용납할 수 없으므로 마땅히 폐기되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박정훈 알바노조 위원장 역시 본인의 휴대폰 압수수색 경험을 밝히며 국민의 사생활을 캐내는 정권을 비판했다. 박씨는 지난 1월 22일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권익을 찾기 위해 서울고용노동청에서 기습시위를 벌인 후 연행되었으나 구속영장이 기각된 바 있다.
그는 "조사기간 내내 사건과 관련한 모든 것을 진술했고, 위원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이야기 하였음에도 휴대폰을 압수수색 당했다"고 말했다. 경찰과 검찰이 내밀한 사생활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빴지만, 관련 부분을 지울 시 증거인멸로 몰릴까 두려워 삭제할 수도 없었다.
박씨는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데 휴대폰이 필수적인 시대에, 압수수색이 이렇게 쉽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정당한 일인지 되물었다. 여기에 자신의 휴대폰 압수수색을 담당했던 경찰관이 "휴대폰 디지털 포렌식(디지털 저장장치에서 오래 전 삭제된 내용을 복구해 데이터 수집, 분석, 보고서를 작성하는 작업)이 워낙 많이 이루어져 바쁘다"고 말할 만큼 사찰이 버젓이 일어난다고도 말했다.
실제로 박씨 휴대폰의 디지털 포렌식은 압수수색 이후 일주일 이상이 걸렸다. 그는 "첨단기기를 동원해 국민의 사생활을 복원하는 데는 바쁜 정권이, 정작 국민의 삶을 복원할 시도는 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며 발언을 마무리 지었다.
민중총궐기 참가한 농민의 대학 동기까지 조사이어서 충남 예산의 20대 농민 김수로씨도 증언했다. 김씨가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이후 경찰은 출석요구서도 없이 그의 집에 여러 차례 찾아왔으며, 결국에는 세월호 관련 재판을 다녀오던 김씨를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체포했다.
김씨가 "어떻게 그 시간에 도착할 줄 알고 기다렸느냐"고 물었지만 경찰은 "나중에 우편으로 알게 될 것이다"라고만 답했다. 그러나 이후 김씨가 예상했던 통신기록 감찰 통지서 같은 것은 오지 않았고, 경찰이 김씨의 휴대폰을 얼마나 들여다보았는지 역시 알 수 없었다.
이후 청구된 구속영장이 기각되었음에도 김씨는 다시 한 번 경찰 조사에 응해야 했다. 경찰은 조사를 하던 중 민중총궐기 당시 채증된 사진을 근거로, 사진 속 여성과 닮은 김씨의 대학동기를 거론하며 집회에 함께 참여했는지를 물었다. 단순히 페이스북 친구목록을 뒤져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결국 해당 대학동기까지 찾아가 조사를 벌였으며, 이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 김씨는 본인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을 때보다 더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자신과 아무런 관련 없는 주변인들까지 피해를 입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 김씨는 전화를 하는 것부터 SNS에 게시물을 올리는 행동 하나하나가 무척 조심스러워졌고, 경찰이 보고 있다는 생각에 시달려야 했다. 김씨는 말미에 "자신의 삶이 공권력에 의해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임용시험 보려면 형사처 벌을 받으면 안 돼" 협박도마지막 사찰 피해 증언자로 나선 박홍선씨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친구의 사례를 털어놓았다. 박씨의 친구는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에 참여했으나, 당시에도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어 경찰과의 충돌을 피해 멀찍이서 현장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궐기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의 출석요구서를 받았다.
그런데 출석요구서보다 놀라웠던 것은 조사 당시 경찰이 보여준 그의 개인정보들이었다. 그의 통화 발신내역을 조회, 시간별 위치를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으며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캡처해 함께 한 이들의 신원도 모두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학교 홈페이지에 올린 게시물과 동아리 활동 내용 등을 들이밀며, "자꾸 진술을 거부하면 주변인을 조사할 수밖에 없다", "임용시험을 보려면 형사처벌을 어느 정도 이상 받으면 안 된다는 것 알고 있지요?" 등의 발언을 하며 사실상 협박을 가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경찰의 집요한 조사는 이어져서 박씨 친구의 부모와 사무실에 전화를 하고, 심지어는 집회에 참여하지 않은 애인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두 번이나 출석을 요구했다. 요구에 응하지 않자 경찰은 직접 학교로 찾아오기까지 하였다.
한 친구는 주변 친구들이 계속해서 조사를 받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형사사법포털을 조회했다. 경찰은 얼마 뒤 "형사사법포털을 여러 번 조회한 기록 때문에 전화를 걸었다"며 질문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단지 형사사법포털을 여러 번 조회한 기록만으로 잠재적 범죄자로 몰리게 된 것이다.
박씨는 "경찰은 이미 우리를 사찰하고 있었다. 통화발신내역을 조회하고, SNS를 훔쳐보며, 가족, 친구, 연인관계까지 알고 있는데 이것이 사찰이 아니면 무엇이냐"며 지금 필요한 것은 테러방지법이 아니라 정권의 불법감시를 막을 수 있는 사찰방지법이라고 주장했다.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사찰, 감시하는 법 자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