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한테서 뜨개질을 배우는 아홉 살 살림순이. 그냥 '교육'이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면서 배울 적에는, 아이 손끝에서 새로운 살림이 피어나면서 '살림 이야기'가 자란다고 느낍니다.
최종규
그냥 하는 말이라면 '그냥 말'로 끝납니다. 말에 생각을 담아서 살을 붙여 줄거리를 엮으면 '새 이야기'로 거듭납니다. 아이들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어도 서로 이 이야기를 쉽게 잊을 수 있고, 아주 짧은 이야기이지만 서로 오래도록 되새길 수 있어요.
아침에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하는 곁에서 바느질을 하는데, 큰아이가 문득 나를 보더니 큰소리로 외치더군요. "아버지 코에 콧물이!" 나는 바느질에 온마음을 쏟느라 코에서 콧물이 주룩 흐르는지 못 느꼈어요.
이때에 이 일을 놓고 우리는 '그냥 말'로 끝맺을 수 있고, '아버지가 너희 나이만큼 어리던 날 콧물을 흘리면서 놀던 나날'을 떠올리면서 '새 이야기'로 이을 수 있습니다. 또는 "떼끼!" 하면서 뭔 콧물을 보고 그러느냐 하고 아무 이야기가 없이 지나쳐 버릴 수 있겠지요. 또는 '콧물'을 이야깃감으로 삼아서 그야말로 꿈나라를 누비는 '새로운 이야기잔치'를 벌일 수 있어요. "콧물나라에 콧물공주가 살고 콧물나무꾼이 사는데 ……." 하면서 재미난 한때를 보낼 만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야기'를 짓거나 나눈다고 할 적에는, 우리가 누리는 삶이나 일구는 살림을 돌아보면서 '재미있고 즐겁게 생각을 꽃피울 모습'을 느끼거나 알아채도록 북돋운다는 뜻이라고 느껴요. 아침저녁으로 먹는 밥으로도 '밥 이야기'를 지을 수 있고, 늘 하는 소꿉놀이로도 '소꿉 이야기'를 지을 수 있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이야기'를 지을 수 있고요.
사람들은 왜 자기가 겪거나 듣거나 본 이야기를 전하려고 할까요? 아마도 재미나고 흥미롭기 때문에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146쪽)이처럼 재능 있는 이야기꾼이 하는 이야기는 사람의 목숨도 구하고 상대의 마음까지도 바꾸어 버린다는 걸 보여줍니다. (166쪽)<10대와 통하는 옛이야기>는 '이야기'가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차근차근 짚습니다. 흔히 '옛이야기'라고 하면 어린이만 재미있게 듣고 끝내는 이야기로 잘못 알기 일쑤입니다만, 예부터 '옛이야기'는 늘 '오늘이야기'로 즐기거나 나누었다고 하는 대목을 밝혀요. 이 나라 푸름이가 '옛이야기·오늘이야기·이야기' 이 세 가지 얼거리를 찬찬히 짚으면서 '푸름이 스스로 새로 짓는 살림 이야기'를 가꿀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들려줍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무리 까마득히 오래된 옛날에 있던 일을 들려주는 '옛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오늘 이곳에서 주고받을 때에는 '오늘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기 마련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돌아보면서 되새길 만한 생각이나 슬기나 느낌이나 꿈이 깃든 이야기이기에 두고두고 즐기면서 물려주는 '옛이야기'이자 '오늘이야기'라고 할 만해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생각을 북돋웁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마음이 자랍니다. 이야기로 꽃을 피우면서 사랑이 함께 피어나고, 이야기로 잔치를 벌이면서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두레를 이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