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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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낀 기나긴 설 명절 연휴에도 편의점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지난달 9일,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서 만난 김수연(22, 가명)씨는 정산에 한창이었다. "예전엔 오래 걸렸는데 이젠 가뿐해요." 수연씨는 자신을 '정산의 달인'이라고 칭했다. 날마다 이렇게 정산한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사장에게 '인증'한다. 종종 장부에 구멍이 생기자 지난달부터 도입된 조치라고 한다.
- 오늘 장사는 잘 됐나?"로또만 100만 원어치 팔았다. 오늘은 그래도 손님 별로 없는 편이다. 평소에는 손님들이 뭉쳐서 '훅' 와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 편의점 알바는 언제부터 시작했나?"석 달 정도 됐다. 주말에 주 2일로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한다. 원래는 총 세 명의 알바가 돌아가며 일한다."
- 설 연휴인데 어떻게 알바를 하게 됐나?"이번 연휴에 6일, 7일, 9일, 10일 이렇게 설 연휴 당일 빼고 모두 출근 중이다. 9, 10일은 '땜빵'이다. 최근에 알바를 빠진 적이 있어서 연휴에 출근해달라는 사장님 부탁을 안 들어줄 수 없었다."
중간 진열장 2개로 꽉 들어찬 좁은 매장이지만, 역 바로 맞은편에 있는 편의점으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밀려들어왔다. 십여 분 동안에만 20여 명의 손님이 왔다 갔다. 주로 복권이나 소주, 담배를 사는 손님들이다.
- 로또 사는 사람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일요일은 로또 바꾸러 오는 사람들만 많다. 근데 왜 이렇게 다들 당첨이 안 되는지… 내가 죄송하다고 하고 싶을 정도다. 정말 불쌍하다(안타까운 표정)."
- 연휴 말고 평소 주말에 알바를 할 때는 어떤가?"자주 앉아있을 수 있긴 한데, 알바 하면서 책을 읽다가 걸린 이후로는 할 게 없어서 심심하다. 사장님한테 엄청나게 혼났다. 주로 SNS를 한다. 생산적인 걸 할 수가 없다."
- 책 읽는 건 어쩌다 걸린 건가? "CCTV로 내가 책 읽고 있는 걸 보고서 오신 것 같다. 사장님 집이 근처라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올 수 있다."
혹여 딴짓을 할까 불안한 사장님의 염려와는 달리 수연씨는 쉼 없이 움직였다. 정산표를 작성하고, 계산하고, 냉장고에 있는 음료를 보온기로 옮겨놓기도 하고, 단골손님들과 대화도 주고받았다. 손님들이 오가는 편의점 안을 구경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일일이 손님을 맞는 알바에게는 더 짧은 시간이리라.
"정시퇴근을 한 적이 없다" 한 시간여를 계속 서 있던 끝에 교대해줄 야간 알바 노동자 A가 왔다. 근무시간 시작도 전이지만, 그는 잔뜩 쌓인 쓰레기통을 비우고 냉장고 뒤쪽에서 음료를 능숙하게 채워 넣는다. "초콜릿이 왔구나!"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초콜릿 판매대를 설치해야 한다. "안 돼!" 수연씨가 절규한다. 결국, 수연씨는 내일도 출근해 초콜릿 매대 설치를 돕기로 했다. A의 배려 덕분에 일을 조금 일찍 마치고 인근 카페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 아까는 정말 바빠 보였다. 손님들이 그렇게 한 번에 쏟아져 들어올 땐 어떻게 하나? "다 요령이 있다. 예를 들어 토토, 로또, 담배 계산이 한 번에 들어오면 우선 토토를 기계에 넣고, 토토가 나오는 시간 동안 로또를 넣고, 담배를 계산한다. 그럼 3가지를 할 수 있다. 재촉하는 분이 계시면 "잠시만요"라고 말을 한다. 일부러. '네가 너무 급했어'라는 내 소심한 반항이다. "잠시만요"라고 하면 손님들이 '내가 알바를 힘들게 했구나!'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웃음)"
- 손님들이 재촉을 많이 하나 보다."가끔 밀릴 때면 그런 분들이 있다. 그래서 난 알바랑 싸우는 사람이 정말 싫다. 알바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있는 건데, 그걸 이해 못 하는 게 안타깝다. 내가 아는 분은 식당에 가서도 절대 알바를 재촉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은 30분이 지나도 음식이 안 나오기에 조심스럽게 물어봤는데 주문이 안 들어가 있었다(웃음)."
- 알바비는 얼마나 받나?"최저 시급이다. 야간수당, 주휴수당은 해당되지 않는다. 첫 달은 40만 원 정도 벌었는데, 지난달은 빠질 일이 생겨서 27만 원밖에 못 벌었다. 이번 달에 세뱃돈을 받아서 정말 다행이다."
- 밥은 언제 먹나? "오전 7시부터 일을 하는데 대부분 아침은 못 먹고 나간다. 보통 빵을 싸가서 알바하면서 먹는다. 오전 11시에 '폐기'가 나오면 삼각김밥 같은 걸 먹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지금 일하는 편의점 음식을 별로 안 좋아해서 배고파도 그냥 참는다. 폐기는 지**(다른 편의점 상표)가 제일 맛있는 것 같다."
- 아침 일찍부터 일하려면 피곤하지 않은가?
"늦게 자면 죽을 것 같다. (웃음) 아침에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심해서 새벽에 두세 번은 깬다. 그게 고통스럽다. 오전 1시 반에 잠든 날이 있었는데, 조금밖에 못 잔다고 생각하니 힘들었다."
- 그럼 퇴근은 제때 할 수 있는 건가?"알바하면서 정시퇴근한 적이 없다. 20분씩 더 일한다. 사람들 빼먹은 음료를 냉장고에 다시 채워 넣어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혼자서 일하는 도중에 냉장고 뒤로 들어가 버릴 수는 없지 않나. 근무시간이 끝나고 다음 알바가 오면 그때 들어가서 채운다. 손님이 계속 오는 데다가, 냉장고에 들어가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 정시에 가서 20분 늦게 퇴근한다. 그러려니 한다. 편의점이 집에서 가까워서 다행이다."
성희롱부터 인생 상담까지, 편의점 '진상' 손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