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
나무 옆 의자
규영 소설 <백 번의 소개팅과 다섯 번의 퇴사>는 마치 마스다 미리 만화책의 소설 버전 같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이야기가 균형 있게 진행됐고, 서른 이후의 여성들이 한 번쯤은 해봤을 두 주인공의 고민이 산뜻한 에세이톤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 구월과 우영은 서른두 살이다. 둘은 같이 살고 있다. 우영의 직업은 마케터, 구월의 직업은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 특출날 것도 모자랄 것도 없는 보통의 두 친구에겐 요즘 고민이 있다.
우영은 퇴사를 하고 싶고, 구월은 연애를 하고 싶다. 그럼 하면 될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우영은 이미 다섯 번이나 사표를 쓴 경력이 있고, 구월은 소개팅을 백 번이나 넘게 해놓고도 그간 한 번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영이 여섯 번째 퇴사를 앞에 두고 고민을 하는 이유는 짐작할 만하다. 가뜩이나 취업이 어렵다는 이 시기에 퇴사는 무슨 퇴사인가. 가뜩이나 우영은 이미 다섯 번이나 퇴사를 하지 않았나. 하지만 우영으로서도 할 말은 있다. 이번엔 기존과는 다른 이유로 퇴사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회사에 적응하지 못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면 이번엔 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에 그만두고 싶은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우영은 글을 쓰고 싶다.
구월은 예쁘장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 그런 구월을 본 남자들은 처음엔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사귄 지 2개월만 넘으면 남자들은 떠나더라. 떠나고 나선 금세 결혼에 골인까지 한다. 친구들은 구월의 문제로 무(無) 매력을 든다. 모자란 것 하나 없는 아이인데, 매력 또한 하나도 없다고. 구월로서는 어떻게 하면 매력 있는 여성이 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연애를 포기하고 싶진 않다.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어봤던 독자라면 이 소설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대부분의 고민들이 으레 그렇듯, 책 속 고민들도 명쾌하게 해결되진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해답을 얻으려고 이런 책을 읽는 건 아니니까. 공감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와 비슷한 누군가가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지니고 우리와 비슷하게 약간은 허둥대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으니까.
책의 화자는 우영이다. 그러다 보니 우영의 이야기가 더 많았다. 우영은 주변 인물들을 통해 따뜻한 위로를 받곤 하는데, 오빠도 역시 우영을 위로한다. 과연 또 퇴사를 해도 되는 것인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우영은 우영보다 모든 것이 뛰어난 오빠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때 오빠가 한 말에 위로받은 사람이 어디 우영 한 명뿐이었을까.
"우영아. 내가 회사에 다니면서, 그것도 세계 곳곳에서 근무하며 절실히 깨달은 게 있는데....""응, 말해봐.""... 우리가 결코 신의 뜻을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신은 회사에 다니라고 인간을 만든 것 같진 않아." - <백 번의 소개팅과 다섯 번의 퇴사, 59쪽> 중에서
백 번의 소개팅과 다섯 번의 퇴사
규영 지음,
나무옆의자,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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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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