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로 주변에 모여든 신발들
이규봉
지난밤에도 밤새껏 장대비가 왔다. 다음 날이 되었음에도 쉬지 않고 굵은 비가 계속 내린다. 오늘은 제대로 갈 수 있을까 걱정된다. 우리 한국인들 빼고 모두 출발했다. 우리도 7시 반쯤 출발했다. 굵은 비는 아니지만 비는 계속 내린다. 그나마 다행이거니 하고 걷는다. 오늘 해발고도 600미터 지점에서 1000미터 지점에 있는 맥키논 고개(Mackinnon Pass)까지 올라가고 다시 내려와야 한다. 나흘 중 가장 힘든 구간이고 어제 헬기로 탐방객을 나른 구간이라 또 헬기를 타야 되나 하는 걱정도 앞선다.
계속 올라가기만 하는데 사방이 다 절경이다. 사진보다는 동영상이 더 어울린다. 수 백 미터씩 가늘게 떨어지는 수 십 개의 폭포들, 빙하가 만들어낸 분지, 각종 식물들, 구름! 가히 세계 제일의 트랙 중 하나라고 말할 만하다. 저 풍광을 눈으로만 보아 기억하기에는 우리기억력은 너무나 부실하고 그렇다고 카메라에 담기에는 그 용량이 너무나 부족하니 어찌하면 저 풍광을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을지!
지금 세계에서 가장 장엄한 곳 중의 한 곳에 내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참으로 생애 최고의 멋진 귀하고 귀한 경험을 하고 있다. 더구나 비가 와서 더욱 절경이다. 산이 높아 지그재그로 길을 따라 올라갔다. 높은 지대라 바람은 불고 추워 손이 시렸다. 1시간 반쯤 지나니 웬 십자가가 있다. 맥키논 기념비이다. 바로 뒤 고갯마루가 오늘 오를 최고의 높이이며 맥키논 고개의 정상으로 해발고도 1154미터이다. 오직 올라왔듯이 이제는 오직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바로 아래에 쉼터가 있어 들렸다. 고맙게도 가스레인지가 있어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시며 시린 손과 속을 풀 수 있었다. 이곳의 화장실은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데 아쉽게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뉴질랜드 정부의 후원으로 테 아나우 호수에서 밀포드 사운드에 이르는 일명 밀포드 트랙을 1888년 10월 16일 맥키논(Quintin Mackinnon)과 미첼(Earnest Mitchell)이 탐험하여 처음으로 발견했다. 맥키논은 자신이 발견한 이 길의 첫 번째 안내자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1892년 맥키논은 탐험 중 테 아나우 호수에 빠져 실종되었다. 이 고개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따 맥키논 고개로 부르고 100주년 되는 1988년 10월 16일 그 두 사람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