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전진대회 참석한 안철수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30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0대총선 국민의당 수도권 전진대회'에서 인사말을 마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권우성
만인이 주지하듯이 안철수는 컴퓨터 백신을 연구하고 만들어 팔아 재벌이 된 IT전문가다. 그런 그가 지금 정당을 창당해 한국정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정치에 입문한 지 3년만에 정치판, 특히 야권의 판을 흔들고 있다.
정치와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입신양명에 성공한 이 신참 정치인이 4.13 총선의 판도를 쥐고 흔드는 선장이 되어 있다. 정치 문외한으로 살아온 그의 경력은 오히려 '때묻지 않은 참신함'으로 탈바꿈해서 정치변화를 바라는 민심의 배출구가 되어 기성 정치권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그의 성공은 곧 야권의 참패와 여권의 압승으로 귀결되고, 그의 패배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패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야당의 전통적 기반인 호남공략에만 치중한 결과다. 부산출마나 비례대표 15번대 이하 배수진을 치라는 주변의 숱한 권유를 뿌리치고 자신의 고집대로 밀어붙인 데 따른 업보다.
새누리당이 공개적으로 야권연대를 거부하고 있는 안철수 대표를 응원하고 있는 이 희극을 어찌 외면하는가.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안철수와 국민의당 지지자들은 새누리당 압승을 개의치 않는다. 새누리당의 압승에 대한 두려움 못지 않게,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안철수도 그렇지만 상당히 많은 안철수 지지자들은 제1야당을 혐오하기까지 한다. 그러니 차라리 죽더라도 더민주와 같이 죽기까지 각오한 이들도 상당수다. 이번 총선의 비극은 사실 너도 나도 함께 죽기로 각오하는 것을 장렬한 '옥쇄투쟁'으로 인식한 데서 잉태된 것이다.
비극의 전선은 박근혜 정부에 실망한 국민의 시각으로 옮겨 가면 더 확연히 드러난다. 박근혜 정부 3년, 이명박 정부까지 8년간 민주주의와 민생은 파탄나고, 거기에 방송장악, 세월호 참사, 최고조의 남북긴장, 사상최악의 청년실업, 사상 최고의 국가부채 가계 부채 공기업 부채, 자영업 줄도산, OECD 최고의 자살률과 노인빈곤율, 낮은 출산율과 높은 사교육비...박근혜 정부 아래서 사는 백성 치고 정신은 피폐해지고 먹고 사는 일이 절박하지 않은 자는 드물다.
선거 때만 되면 경제니 민생이니 떠들어 댔지만 날이 갈수록 먹고 사는 문제를 최악으로 만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심판하고 싶은데, 그 반대편을 보니 더욱 한심하다는 게 딱 지금의 민심이다.
양당 기득권 타파, 제3정당 다 좋은데 그거 하겠다고 나선 안철수나 국민의당도 '허당'이라는 게 지금의 여론이다. 새누리당 간판은 나뭇가지로 살짝 긁는 데 그치긴 했어도, 더불어민주당 얼굴은 면도칼로 살점을 도려냈으니 성과라고 자평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걸 지켜보는 민심의 절망은 깊고도 깊다.
내가 생각한 국민의당이 지금의 이 상태는 아니었다. 명실상부한 중도개혁 노선으로 새누리당 지지층의 10~15%는 모셔오고, 더민주의 지지층도 역시 그만큼 끌어와서, 지지 정당이 없는 30% 안팎의 부동층 중 절반만 끌어오면 성공하는 전략이었다. 그러자면 지역적으로 영호남 동시 공략, 이념적으로 좌우도 아닌 중도개혁노선, 지지기반으로 상위 1%를 제외한 하위 99%를 향한 민생정책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행되어 온 과정은 참담했다. 전략도 없고, 사람도 없고, 비전도 없었다. 전문가는 배제됐고, 계파 보스들과 가까운 몇 사람이 공천을 좌지우지 했다. 영남은 애초부터 포기상태였고, 중도개혁 정책도 실종됐다. 낡은 이념논쟁을 넘어선 실용적 중도개혁정책이 어떤 건지 고민한 흔적도 없이 공허한 나열만 하기는 거대양당과 다를 바 없었다.
선거 국면에서 국민의당이 임명한 몇몇 대책위원장의 면면을 보면, 사람이 그리 없는지 혀를 찰 정도다. 이 정당이 더민주, 심지어 새누리당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려면, 신기에 가까운 판단력과 혜안이 필요하지만 그게 있어도 알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솔직히 나는 왜 안철수 지지자들이 그를 지지하는지 잘 모른다. 10% 안팎의 정당 지지도가 나오는 걸 보면 여전히 그를 둘러싼 '파벌적' 애착은 이번 총선의 결정적 변수다. 그의 결정에 따라 상대 정당의 후보를 되게 할 수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이것만으로도 그의 존재 가치는 무시할 수 없다. 안철수 자신이 만든 성공신화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정의 표현일 수도 있고,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만든 반사이익의 결과일 수도 있다.
안 대표, 제3당 향한 도전 접고 야권연대 나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