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석권한 국민의당, 그들에게 남겨진 숙제

국민의당은 호남을 지역주의의 볼모로 삼지 말라

등록 2016.04.15 09:51수정 2016.04.1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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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참패로 기록될 20대 총선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야권의 드라마틱한 승리를 의미한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은 텃밭이었던 호남에서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의 압승과 경남의 선전을 바탕으로 원내 1당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국민의당은 호남의석 28석 중 23석을 얻으며 호남의 맹주로 떠올랐고, 정당득표에서도 더민주에 근소하게 앞선 2위를 기록하며 당당히 원내 3당을 차지했다.

정의당 역시 당초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심상정 노회찬 두 쌍두마차가 나란히 원내 진입에 성공했고, 비례대표에서도 4석을 얻으며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동력은 확보했다. 이렇듯 야권은 전체 의석 300석 중 총 167석을 차지하며 16년 만의 '여소야대' 구도를 만들어냈다. 야권필패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낸 값진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야권의 승리로 막을 내린 20대 총선의 최고 승자는 뭐니뭐니해도 국민의당이다. 원내 1당의 영예를 차지한 더민주는 호남에서의 완패가 너무나 뼈아프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60년이 넘게 지켜온 지지기반을 하루 아침에 국민의당에게 내주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왜 그럴까?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4일 오전 국민의당 마포구 당사에서 선거상황판에 당선된 후보의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4일 오전 국민의당 마포구 당사에서 선거상황판에 당선된 후보의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대한민국 정치는 본질적으로 지역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더민주는 호남과 영남의 민주화 세력이 결합한 정치적 결사체였고 호남은 이들을 떠받치는 실질적 근거지였다. 그런데 이번 총선으로 더민주는 자신들의 지역적 기반이었던 호남을 국민의당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전투에서 승리는 했을지는 모르지만 자신들의 본진을 빼앗기는 아찔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물론 국민의당을 선택한 호남의 진심은 시간이 조금 더 지나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거부인지, 아니면 더민주에 대한 반감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러나 이번 총선결과로 (논쟁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반문정서'와 더민주에 대한 호남의 반감이 실재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졌다. 따라서 더민주의 당면 과제는 돌아선 호남의 민심을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느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적 기반이 없는 정당이 하나같이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환기해 보면 그 이유는 자명해진다.

반대로 국민의당은 확실한 근거지를 확보함으로써 탄력적인 정당 운영을 위한 전기를 마련했다. 국민의당이 호남 전역을 거의 싹쓸이했다는 것은 지역 민심이 완전히 돌아섰다는 방증이다. 호남은 수도권을 비롯 강원과 충청, 영남을 공략할 수 있는 교두보의 의미가 있다. 국민의당이 이번 총선으로 얻는 것은 38석의 원내 의석이 아니라 중권 공략을 위한 '전진 기지'다. 국민의당을 이번 총선의 진정한 승자라 칭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호남 석권한 국민의당, 그 속에 '독'


국민의당의 호남지역 압승은 '반문정서'와 '더민주 심판론'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였다. 국민들이 새누리당을 심판했듯이, 호남은 더민주의 오만을 심판했다. 호남지역에 팽배해 있던 '더민주 심판론'의 수혜를 국민의당이 가져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의 존재와 더민주 탈당파 호남 의원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들은 '반문정서'와 '호남홀대론'을 적절히 버무려 호남 지역민심을 지속적으로 자극했고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독'이 있다. 국민의당의 호남 석권이 더민주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심판의 결과였지 그들에 대한 완전한 지지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추론이 가능한 이유는 문 전 대표가 여전히 호남지역의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고,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 역시 30% 가까운 지지율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의당에 대한 호남지역의 민심이 대구·경북의 경우처럼 확고부동한 수준은 아니라는 의미다. 결국 '캐스팅보트'를 쥔 야권의 한 축으로서 국민의당이 앞으로 보여줄 행보에 이 정당의 미래가 달려있는 셈이다.


필자의 고민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동안 국민의당이 보여준 노선과 철학, 정체성이 민주화의 상징이자 중심 축이었던 호남정신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국민의당의 정치적 스탠스는 새누리당과 더민주 사이의 중간 어디쯤 된다. 극우 보수인 새누리당과 중도 보수인 더민주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당의 보수적 색채는 호남이 간직하고 있는 역동성과 진보성과는 도저히 섞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호남은 국민의당을 압도적으로 선택해 주었다. 이같은 결과는 (믿고 싶지 않지만) 호남이 지역주의에 기반한 폐쇄적 패권주의로 돌아섰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국민의당이 호남정신과 'DJ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호남의 지역주의에 안주할 생각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 넘을 대안과 비전을 제시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지역 민심을 자극하고 분열시키는 방식으로 호남의 지역주의를 부추겼을 뿐이다. 이번 총선에서 윤곽이 드러난 호남 패권주의의 가능성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필자가 그동안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표를 비판했던 것은 바로 이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만약 호남이 지역주의에 갇히고 폐쇄적 패권주의의 길을 걷게 된다면 이보다 더한 정치적 비극이 또 없다. 물론 이번 총선 결과로 호남이 폐쇄적 패권주의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일이다. 주지한 것처럼 시간이 더 흘러야 정확한 민심의 향배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총선결과에 대한 천정배 상임공동대표 및 지도부의 아전인수와 오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에게 간곡히 당부하고 싶은 것 하나는 호남을 더 이상 지역주의와 패권주의의 볼모로 삼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이미 영남 패권주의가 대한민국 정치를 집어 삼키고 있는 상황에서 호남마저 같은 길을 걷게 된다면 패권적 지역주의는 더욱 더 고착화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 정치는 점점 더 퇴화되어 갈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는 명백한 정치의 퇴보이며, 이 땅의 민주화와 진보 정치를 선도해 온 호남과 DJ에 대한 모독이자 기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민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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