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시기만 되면 지적되는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선거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가장 설득력 있는 사회적 장치가 되었다. 하지만 '장애인'과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만큼 어색한 조합이 또 있을까.
지난 4.13 총선, 대구는 그 어느 때보다 이슈 지역으로 떠올랐다. 결과 역시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장애인 당사자, 그 가족들의 뒷맛은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의 폐지 ▲ OECD 국가 평균 수준으로의 장애인복지 예산 확대 등을 약속한 대구 국회의원 후보는 단 6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정책을 제안한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 지역은 생계난을 이유로 어머니가 장애 자녀를 목 졸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지난해에는 수용시설에 살던 장애인 언니를 데리고 나와 살고자 했던 여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최근에는 장애인 집단 거주시설 내에서의 인권침해 및 비리 문제 등이 연이어 불거지고 있기도 하여 그 어느 곳보다 국회의원 후보들은 장애인 인권에 민감하게 관심을 기울여야만 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장애인계 민의와 선거는 물과 기름처럼 겉돌았다.
4월 20일은 36번째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의 날은 UN이 1981년을 '세계 장애인의 해'로 지정하면서, 당시 '복지국가 건설'에서 권력의 정당성을 찾고자 했던 전두환 정권에서 실시한 국가 차원의 기념사업이다. 지역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장애인 및 관련단체, 기업 및 대학 봉사단체, 학생·일반시민·관련공무원 등이 참여한 가운데 기념식, 축하공연, 먹거리광장 운영 등과 같은 행사가 진행된다. 취지에 적합한 이들에게는 훈장, 표창 등의 상을 수여하기도 한다.
대구시도 올해 '장애인대상'을 수여한다. 장애를 극복하고 자립하여 타인의 귀감이 되는 장애인 당사자에게는 장애극복부문으로, 장애인에 대한 헌신과 봉사로 사회의 귀감이 되는 개인이나 단체에게는 장애봉사부문으로 표창할 계획이다. 간접선거와 같은 반(反)민주의 역사로 기억되는 시대의 잔재가 이제는 도리어 '장애인도 이 사회의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국가의 대표행사가 되어 있다. 물과 기름처럼 겉돌아야 할 것이 이번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 데 섞이어 이질적인 그 무엇이 되어 있다.
어색함의 원인은 이것만이 아니다. 국민 일반의 투표가 정당한 권리의 행사라면, 장애인의 투표는 미담에 가깝다. 그도 그럴 것이 2014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본인이 원치 않아서'인 34.1%를 제외한 65.9%의 장애인이 교통, 편의시설, 정보, 도우미, 주변 시선 등을 이유로 투표를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우리 사회 지적장애인의 23.3%, 자폐성장애인의 63.9%는 '투표권 없음' 집단으로 분류되어 있다. 연령의 문제를 제외하면, 끊임없이 논쟁이 되고 있는 금치산‧한정치산자에 대한 선거권 제한이 부른 결과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요체이자, 국민 주권의 가장 핵심적인 표현이 선거라면,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환경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제한한다면, 결국 이것은 주인의 자격이 없다는 또 다른 사회적 규정에 다름 아니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하나로 부를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실질적인 평등에 대한 '열망'과도 같은 사상이었지만, 동시에 한정된 유산계급, 남성 가부장, 백인 등 지배층의 사회통치 수단으로 일부 세력의 전유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어쩌면 선거권이라는 '하나의 행위 권리'가 아니라 '이 사회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자격을 둘러싼 인정과 불인정 사이에서 갈등하고 반목하며 투쟁해 왔던 과정 그 자체일지 모른다.
4월 13일에서 4월 20일까지 7일. 우리는 사회적으로 여전히 인정되지 않고 있는, 민주주의의 주인 아닌 주인의 삶의 양면을 접하고 있는지 모른다. 민주주의의 핵심적 권리에서는 배제된, 그러나 또 다른 어떤 방식으로는 과잉되어 포섭되고 있는 존재들의 모습 말이다. 4월 13일의 모습이 이 땅의 장애인이 살아가는 진짜 현실이고, 사회질서의 본래 모습이라면, 4월 20일의 모습은 당신에게 과연 어떻게 다가오고 있을까.
7일, 신은 이 기간 동안 '무에서 유를', 혼란에서 천지를 창조했다고 한다. 최근 7일을 보며 우리 사회는 도리어 '유에서 무를', 있는 존재를 없는 존재로 은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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