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장위 1동 투표소. 건물 내부에는 몇 사람이 투표를 하고 있었지만, 수가 많지 않아 2분도 걸리지 않고 투표가 끝나버렸다.
이대한
아침의 그 서늘한 투표소의 풍경은 이 말들과 내 머릿속에서 뒤섞여 더욱 무서운 상상을 만들어냈다. 진정 이 나라의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선거를 포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이었다. 오전 10시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아침. 흐린 하늘은 마치 그날 선거의 결과를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날 오후, 구름이 걷히며 선겨율이 급등했다. 선거율이 높으면 특정 정당이 유리하다는 말이 돌고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이전보다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며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이 났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나는 또 다시 절망했다. 특정 정당이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과 반대로 대부분의 언론이 현 정권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리고 야권 심판론부터 곧 다가올 세월호 2주기, 종북 등의 키워드로 야권을 비판하며 기사를 터트렸다. 또 다시 민주주의는 저무는가 하는 탄식이 나왔다.
그렇게 투표가 끝나고 개표가 시작되는 것을 확인하고, 언론에서 내보내는 기사들을 보다 개인적인 볼일을 봤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개표 상황을 보려고 떠올린 인터넷 창에서는 그야말로 '대혁명'이 일고 있었다. '야권 심판론', '종북' 등을 외치던 언론들은 서서히 여권의 잘못과 현 정부의 실수, 실패에서 '여권 심판론'을 들고 기사를 써내려갔다. 마치 현 정권의 프로파간다와 같았던 언론의 기사들은 개표를 기점으로 반전하여 오히려 그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쓴 것이다.
이 단 몇 시간만 보더라도 대한민국의 정치와 언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언론이 정치에서 독립되지 못하고 정권의 동향에 따라 성향이 달라지는, 신뢰라고는 일말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 절망은 희망으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대한민국 민주주의 혈화의 꽃봉오리가 맺혔다.
4월 13일. 그날 이후 주위에서 '헬조선'과 '킹찍탈'이라는 말이 줄었다. 언젠가 대한민국을 떠난다는 말이 줄어들었다. 나도 그리고 주위의 지인들도 이제 이 땅위에 민주주의가 피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기성세대의 포스트 박정희 싸움에 말려들지 않고, 실업과 가난 속에서 절망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생겨나고 있다. 정치권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그것을 지키는,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싸움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물론 바뀐 세력이 무조건적으로 서민의 편이라던가 청년들을 위해 일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무작정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또한 가지지 않는다. 단지, 이번 선거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최선'을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 컸다. 결국은 또 1번이겠지, 나라를 팔아도 1번이라는 기성세대에 밀려 또다시 그 '차악'조차 선택하지 못하겠지 라는 불신과 절망이었다.
하지만 이 단 하루의 과정과 결과가 모든 것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차악'일지언정 '최악'은 아니기에 어제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이렇게 계속 조금씩 나아진다면 언젠가 봉오리 진 민주주의의 혈화가 그 붉고 아름다운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 주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다. 그리고 벌써부터 그 조짐은 보이고 있다. 선거일 이후 인터넷이나 뉴스 등 언론 등에서 '종북'을 필두로 한 이념 싸움이나 일방적인 여권 쪽에 유리한 보도들이 줄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