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학교 폐지·일반학교 살리기 서울 공대위' 소속 회원들이 2014년 7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교육의 정상화를 촉구하며 서울에 있는 25개 자사고 지정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유성호
입학사정관제가 처음 도입되던 때의 사뭇 치열했던 논쟁은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이를테면, 짧게는 고등학교 3년, 길게는 12년의 학교생활을 수능 한 방으로 평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당연한' 반론조차 이젠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어차피 수능이든 학종이든 학생들의 '진짜' 학교생활을 그대로 담아내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심지어 학종의 가장 중요한 평가 지표인 학교생활기록부조차 믿을 만한 게 못 된다며 태연하게 말했다. 학교가 소수의 '될 성 부른' 아이들에게 '스펙'을 몰아주고 있다는 사실을 에둘러 지적한 것이다.
"성적이 좋아 명문대 진학을 바라보는 몇몇 아이들은 우리 안의 또 다른 자사고와 특목고죠. 학종을 위해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스펙'은 하나같이 지금껏 자사고와 특목고 학생들이 쌓아온 것과 그대로거든요. 몸부림쳐봐야 '2등'인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마저도 꿈꿀 수 없죠. 가끔 비참하다는 생각도 들어요."그런데 아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예전의 수능 중심 입시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은 아니었다. 학종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임계점에 다다른 마당에, 굳이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차라리 수능이 낫다는 정도일 뿐이다. 말하자면, 오십보백보일 뿐이지만 자사고와 특목고 아이들과의 입시 경쟁에서 수능이 학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불리'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언뜻 요즘 한창 사회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사법고시 존치 문제와도 비슷한 모양새다. 사법고시를 폐지해선 안 된다는 주장의 근거 역시 로스쿨보다 사법고시가 없는 사람에게 '덜 불리'하다는 것 아니겠는가. 여건이 안 돼 애초 근처에도 못 가는 로스쿨보다 수많은 '고시 낭인'이 양산될지언정 한낱 희망이라도 걸어볼 수 있는 사법고시가 더 낫다고 여기는 것과 비슷하다.
좌절과 분노가 큰 탓일까. 아이들이 제시한 대안은 매우 파격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애초 그들과 공정한 입시 경쟁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당장 설립 목적과 동떨어진 자사고와 특목고를 폐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나아가 "초등학생들조차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건동홍국숭세단' 등 대학 서열 노래를 외우고 다니는 데다가, 모두 다 대학에 가는 사회 분위기가 해소되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라고 단언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명문대 진학이 유일하다시피 한 삶의 목적이 돼버린 상황인데, 학종이냐 수능이냐는 하나 마나 한 논쟁"이라며 시큰둥한 반응도 있었다. 어떻든 둘 다 수많은 아이들을 결국 일렬로 세우려는 건 똑같다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입시 전형은 종속변수일 뿐인데, 학벌구조든 승자독식의 사회든 정작 앞서 고민하고 논쟁해야할 건 따로 있다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현실적으로, 대학에 제출하는 학교생활기록부 양식에서 고등학교의 이름을 지우자는 엉뚱한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오로지 입시를 목적으로 자사고와 특목고를 선택하는 아이들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도 덧붙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취업할 때 제출하는 이력서에 최종 학력을 적지 못하도록 하면 공고한 학벌구조도 완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내비쳤다.
아예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 사항을 대폭 줄여 과장과 왜곡 등의 소지를 없애자는 주장도 있었다. 3년간의 교과별 성적 추이와 학교 수업에 대한 충실도를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전형 자료로 손색이 없을 거라고 말했다. 항목이 많다 보니 비어있는 칸이 없도록 대학에서 일일이 챙겨 읽을 것 같지 않은 시답잖은 내용까지 채우려고 다들 안달하는 것 아니겠냐는 거다.
"학종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봇물 터지듯 아이들이 내놓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주객이 전도된 우리 교육 현실을 다시금 절감하게 됐다.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예체능과 교양 과목 등 수능에 출제되지 않거나 입시에 반영되지 않는 교과는 아예 배제돼 버렸고,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할 수 없는 학교활동은 설 자리를 잃었다. 시험에 공부가 종속되고, '스펙'에 학교활동이 좌우되는 현실은 그렇듯 쌍둥이처럼 닮아있었다.
학종을 음서제에, 수능을 과거제에 비유한 그 학생은 천 년 전 고려와 지금의 대한민국의 사회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푸념했다. 혈통과 가문에 따라 특권을 세습한 고려와 경제력에 따라 특권을 대대손손 향유하며 군림하는 대한민국이 대체 무슨 차이냐며 반문했다. 그러면서도 음서제가 시나브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듯이, 학종 또한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이라 낙관했다. 끝까지 특권에 집착하게 되면 혁명을 맞게 되는 게 순리라면서.
그의 말마따나 음서와 과거를 통해 권력을 독점하고 세습한 고려 초 문벌귀족사회는 모순을 드러내며 일거에 무너지게 된다. 개경의 왕궁마저 불태운 이자겸의 난과 연이어 터진 묘청의 난이 그 징후를 보여준 사건들이다. 그러고 보니 바로 다음에 이어질 내용이, 오랫동안 차별 대우에 분개한 무신들이 수많은 문벌귀족들을 죽이고 권력을 빼앗은 무신정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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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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