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의 '투트랙' 선택, 새누리당 '혁신' 없다?

[분석] 의사결정권한 없는 혁신위의 한계 분명해, 친박-비박 갈등 재연 우려까지

등록 2016.05.12 14:29수정 2016.05.1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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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지도부-중진의원 연석회의 참석하는 정진석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원내지도부-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원내지도부-중진의원 연석회의 참석하는 정진석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원내지도부-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유성호

"굉장히 좀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우리 당이 과연 변화를 할 수 있는 당이냐..."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1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 말이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전날(11일) 중진 협의와 당선인 대상 설문조사 등을 토대로 자신이 비상대책위원장을 겸임하되 혁신위원회를 따로 꾸려 외부인사를 영입키로 한 것에 대한 평가였다. 이 같은 결정이 20대 총선 참패 후 부각됐던 '혁신위' 비대위 구성 요구를 외면한 것이라는 개탄이기도 했다.

그는 "총선이 끝나고 국민들은 새누리당의 파격적인 변화와 혁신 이런 걸 보고 싶어하고 실제로 그게 필요한 시점인데 '정진석 체제'가 원유철 원내대표 당시의 시행착오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 같다"라며 "혁신위원회는 자문기구에 불과하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혁신위원회가 아무리 좋은 안을 내놓아도 당헌당규상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를 대신하는 비대위에서 통과가 안 될 수가 있다"라면서 "지금 비대위원으로 누가 구성될지도 모르고 의원총회에서도 (인선안 등이) 통과돼야 한다, 혁신을 밀어붙일 기구에 권한을 안 주고 (위상을) 격하시킨 것"이라고도 비판했다.

하 의원의 말대로다. 정 원내대표가 외부인사 영입의 어려움·짧은 비대위 활동 기간 등 현실론을 앞세워 비대위와 혁신위를 동시에 띄우는, 이른바 '투트랙 전략'을 절충안으로 내놨지만 실제로 혁신위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준석·김문수 통해 증명된 '자문기구' 혁신위의 한계

실제로 의사결정기구가 아닌 혁신위의 한계는 이미 여러 차례 증명된 바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 2014년 7.30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를 구성한 바 있다. 1985년생인 이준석 전 비대위원을 위원장으로 앉히고 당내 상설인사검증기구 설치 등 윤리성 강화 등을 주창했지만, 이 같은 혁신안들은 사실상 7.14 전당대회와 재보선을 거친 뒤 유야무야 소멸됐다.


같은 해 9월엔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보수혁신특위를 발족했다. 20대 총선을 앞둔 혁신안 마련을 위한 자리였다. 당시 보수혁신특위는 ▲ 국민공천제 도입 등 공천제도 개혁 ▲ 국회의원 특권 폐지 및 관련 세비 동결 ▲ 체포동의안 개정 ▲ 출판기념회 전면금지 ▲ 국회의원 겸직 제한 강화 등을 제안했다. 이 중 출판기념회 전면금지 등은 당론으로 채택됐다. 그러나 그 이외의 혁신안들은 20대 총선에서 거의 반영되지 못했다.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김상곤 혁신위'의 경우도 참조할 만하다. '김상곤 혁신위'는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를 통한 현역의원 20% 공천배제, 안심번호를 통한 국민공천단 경선 등 총 11차례 혁신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진통이 상당했다. 당시 당권을 쥐고 있던 문재인 전 대표가 당내 반발에 '재신임 투표'라는 승부수까지 걸고 난 뒤에야 중앙위원회에서 가까스로 공천 관련 혁신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즉, 새누리당이 택한 '비대위-혁신위 투트랙' 역시 이들 위원회와 같은 경로를 걸을 가능성이 농후한 셈이다. 더욱이 '이준석 혁신위'와 '김상곤 혁신위'를 보면 이들의 혁신안을 수용할 당 지도부의 태도가 그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다. 새누리당이 가장 근본적으로 당의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평가받는 2012년 '박근혜 비대위'도 당시 확실한 대권 주자였던 박근혜 대통령의 존재감으로 당내 반발을 돌파하고 당명 변경 등 쇄신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를 제대로 결정짓지 못했다. 이와 관련, 민경욱 원내대변인은 전날 "어떻게 (혁신위에) 전권을 보장할 것이냐"는 질문에 "전당대회를 선출되는 대표에게 혁신위원회에서 결정한 문제를 다 받아들이도록 하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논의는 됐지만 결정된 바는 없다"라고 말했다. "새 당대표가 (혁신안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제재하느냐"는 질문에도 "국민의 시선이 있기 때문에 혁신안이 흐지부지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실제로 혁신위의 안을 선별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나왔다. 차기 당대표 경선에 도전장을 낸 이정현 의원은 이날 YTN라디오 <출발 새아침>과 한 인터뷰에서 "비대위나 혁신위에서 새누리당의 변모된 모습을 기대하긴 어려우니 가능하면 빨리 새 지도부를 구성해서 책임감 있게 그런 것(혁신작업)들을 했으면 좋겠다"라면서 "(당대표가 된다면 혁신안 중) 내용이 좋은 게 있으면 받아들이겠지만 저는 아주 근본부터 바꾸고 싶다"라고 밝혔다.

'파격'으로 불릴만한 혁신위원장 후보 없는데 '땜질식 미봉책' 아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지난 2014년 5월 2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자 정책토론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지난 2014년 5월 2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자 정책토론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결국 혁신위가 이 같은 구조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당 안팎에서 고루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외부인사 영입이 절실하다.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김 대표는 2012년 총선 직전 새누리당에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됐지만 당의 전통적인 색채와는 정반대되는 '경제민주화'를 대표하는 인물로 당 안팎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더민주의 비대위원장으로 임명되어서는 그 권위를 활용해 20대 총선을 사실상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혁신위는 지금 이마저도 어려운 형편이다. 당선인 설문조사에서 혁신위원장 영입 대상으로 거론된 이들이 새누리당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쇄신형 인사'로 구분 짓기 어려운 데다 이미 그 권위가 많이 손상된 이들이기 때문이다.

당장 당선인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진 김황식 전 국무총리만 하더라도 그렇다. 김 전 총리는 대법관·감사원장·국무총리 등 국가 요직을 안정적으로 수행했지만 '파격적인 인물'은 아니다. 또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 경선에 나섰지만 정몽준 전 의원에게 패배하는 등 당 안팎에 영향력을 미칠만한 힘을 지니고 있지도 않다.

그 외에 거론된 김진홍 목사,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수성 전 총리, 인명진 목사, 조순형 전 의원, 황창규 KT 대표이사 회장 등도 그와 비슷하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 같은 지적에 "땜질식 미봉책이 아니다"라며 반박하고 있다. 그는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추구하는 것은 총선을 패배했으니 한번 푸닥거리하는 차원의 혁신위가 아니다, 새누리당을 재창조하겠다는 그런 의미의 혁신위가 돼야 한다"라면서 "혁신위에서 마련된 안은 새 지도부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 "마누라 빼고 다 바꾸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며 "혁신위는 총선 참패 원인 진단·계파해체 방안·정권 재창출 위한 혁신안 마련 등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총선 참패 후 부각된 '친박 책임론'은 인정하지 않았다. 정 원내대표는 "당내 70~80명이 친박인데 다 책임 있느냐, 지도급이 책임있는 것은 맞는데 이들이 떼로 몰려다니면서 나쁜 짓 했느냐"라며 "친박과 비박, 다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대위-혁신위 투트랙' 인준 놓고 계파 갈등 재연?

한편, 이 같은 상황이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당내 갈등을 재점화시킬지도 주목된다. '혁신형' 비대위를 통해 확실한 당 쇄신 작업을 요구했던 비박(비박근혜) 측이 만족할 수 없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당장 하태경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진석 비대위 체제'는 지금 내정이 된 것이라 전국위원회 (인준)를 통과해야 한다"라면서 "제 생각엔 전국위원회에서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 의원만의 생각이 아니라 밑에서 부글부글하는 생각들이 그렇다는 말인 거냐"라는 질문에도 "그렇다, 전당대회를 관리하는데 비상대책위가 왜 필요하나, 위기를 타개하라고 필요한 것 아니냐"라고 답했다.

같은 당 홍일표 의원도 이날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과 한 인터뷰에서 "(정진석 비대위 체제는) 많은 국민들이나 새누리당을 사랑하는 분들이 원하는 방향하고 다른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라면서 "당이 변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혁신형 비대위를 꾸려서 두, 세 달이라도 고통이 따르는 변화를 하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친박 측은 '비대위-혁신위 투트랙' 결정을 수용해야 한다는 쪽이다. 홍문종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한수진의 SBS전망대>에 출연, "제가 보기엔 지금으로써는 제일 좋은 방안 중에 하나"라면서 "혁신위가 제대로 가동된다면 아무 문제없이 혁신위가 (전통적인) 비대위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혁신위 #김황식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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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현안이슈팀·기획취재팀·기동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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