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매일밤 12시가 넘어 땀에 쩌든 옷을 벗어내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깊은 걱정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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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이 창고에서 쌓여 있는 장비들을 들어 옮기며 정리하는 일을 하다 보니 온 몸은 땀에 절었다. 그리고 절대 퇴근하라는 말을 하지 않던 그 선임 덕분에 매일 밤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가곤 했다.
매일 밤 늦게 집에 들어와 땀에 찌든 옷을 벗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 대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거냐며 걱정하셨다.
하루 종일 창고를 정리하는 일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선임사원은 하루 종일 책상앞에 앉아서 현장 설치기사들의 문의 전화를 받으며 전산 시스템상 문제로 개통이 안되는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 업무는 '장비담당자'라고 불리는 나의 선임이 할 일은 아니었다. 필요에 의해서 지원을 해주더라도 본연의 업무를 뒤로 미루면서까지 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하지만 7층 창고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했고 현장에서 발생되는 문제들을 기술적으로 잘 대응해주는 선임의 역량을 높이 평가한 서울 본사에서는 내 선임을 본사로 데려가기 위해 발령을 낸 상태였던 것이다.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나는 짜증이 났다. 결국 이 일들은 내 선임이 떠나고 나면 내가 다 도맡아서 해야 할 일인데 지금 진행하는 업무의 방향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2주 정도가 지났을 무렵 나는 '빨리 선임이 서울로 갔으면..' 하고 생각했다. 아직 업무를 익히려면 한참이 더 걸릴것 같았지만 이대로는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계속된 노가다성 야근과 선임의 이해할 수 없는 업무 스타일은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 스트레스는 '내가 고작 이런 일을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나름 '잘나가던' 나인데 이건 말만 대기업 사원이지 중소기업 다닐 때보다 훨씬 더 못한 처우와 근무환경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껏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될 때는 빠른 결정을 내리고 다시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선택이 후회되지 않도록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결과 만족할만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이기에 지금 내가 처한 이 상황은 또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들었다. 어렵게 들어온 대기업이지만 이대로 계속 다닐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여기를 그만두고 내가 있던 구미로 올라갈까.' 땀에 찌들어 무거운 장비들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고민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 이유는 바로 어머니였다. 아들이 집에 내려왔다고 그렇게나 좋아하던 어머니를 뒤로 하고 다시 또 집을 떠나겠다고 말씀드릴 용기가 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땀에 찌드는 스트레스 속에서 어머니를 생각하며 버티고 또 버텼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드디어 선임이 서울로 갈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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