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관에 직접 못질한 날, 세상이 온통 캄캄했다"

[현장] 잘 알려지지 않은 5.18 희생자들의 사연 담은 작은 전시회

등록 2016.05.18 20:59수정 2016.05.18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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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 열사는 오월항쟁 당시에 시민군의 대변인으로서 외신에 진실을 알리는 역할을 하셨고, 27일 끝까지 도청에 남아 저항하시다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그는..."

매년 5월이 되면 전남대학교에 있는 사적지, 운정동에 위치한 국립 5.18묘역에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같이 온 사람들에게 사적지에 담긴 사연을, 열사분의 이야기를 이야기 해준다.


'박관현 열사', '윤상원 열사', '최미애 열사', '방광범 열사' 등등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 목숨을 잃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울려퍼진다.

반면, 자주 거론되는 이름들은 정해져 있다. '박관현 열사', '윤상원 열사'는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방광범 열사', 가정주부였던 '최미애 열사'의 사연 역시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오월항쟁 당시에 돌아가신 분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 그만큼 무수한 사연들이 존재한다.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들

a 5.18 그림전 전남대학교 일학생회관에 작은 그림전이 열렸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많은 희생자들의 사연을 담은 그림들이 걸려있다.

5.18 그림전 전남대학교 일학생회관에 작은 그림전이 열렸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많은 희생자들의 사연을 담은 그림들이 걸려있다. ⓒ 주철진


a 5.18 그림전 지나가던 사람들은 희생자들의 사연을 담은 그림을 보고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서서 보고, 읽는다.

5.18 그림전 지나가던 사람들은 희생자들의 사연을 담은 그림을 보고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서서 보고, 읽는다. ⓒ 주철진


최근 전남대학교에 위치한 학생회관에서 작은 그림전이 열렸다. 이 그림전은 오월항쟁 당시 목숨을 잃으셨던 많은 분들의 사연으로 탄생한 그림들이다. '조대훈 님', '백대환 님', '강복원 님', '고영자 님', '김호중 님' 등 우리가 알지 못했던 많은 사연들이 그림으로 등장한다.

그림의 밑에는 글로 사연들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사연을 읽고 그림을 보니 더욱더 5.18 당시의 처참함이 느껴진다. 아래는 '민청진 님'의 사연 전문이다.


[2-24] 민청진 님

"서울에서 나무판화 기술을 익혀 광주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던 민청진 님은 공장이 혹시 문을 열었나 알아보려고 나갔다가 친구들과 도청으로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가득한 금남로 한 가운데에 끼어 시위를 구경하고 있을 때 공수부대원들이 갑자기 총을 쏘기 시작했다. 갑자기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를 친구들은 병원으로 옮겼다. 의사는 외상이라 여기고 지혈을 시키고 기본적인 치료만 해주었다.


밤새 통증에 시달렸다. 진통제도 오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병원마다 넘쳐나는 환자에 더는 놓아줄 진통제도 없었다. 다음 날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오른쪽 머리에 유탄이 들어가 뒤통수 쪽으로 깨알만한 파편들이 퍼지듯이 박혀있었다. 수술을 했지만 결국 파편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중단했다. 그 수술 이후 그는 아무 의식이 없이 사흘을 버티다 결국 소생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입관을 시켰다. 자식이 죽어 들어가 있는 관을 앞에 놓고 보니 세상이 온통 캄캄해졌다. 관 뚜껑에 못질을 해도, 못에 망치가 가서 맞지 않았다. 망월동에 아들을 묻는 날도, 아버지는 우두커니 앉아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아들이 병원에 있는 동안, 동업으로 사 둔 5백여만 원 상당의 야채가 모두 썩어버렸다. 당시 집 한 채 값이 3백여만 원을 하던 때였다. 아들을 망월동에 묻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전 재산마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설상가상 어머니마저 암에 걸렸다.

아들이 죽고 한 2년 정도는 남에게 말도 못했다. 폭도라는 오명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었을때, 아버지는 유족회 활동을 시작했다. 시위하다 붙잡혀 최루탄을 뿌려놓은 죄수 수송차에 실렸다가, 철창을 면도칼도 뜯어내고 유리차을 깨고 겨우 숨을 쉬었던 일, 굽이굽이 어두운 산기렝 버려져 혼자 찾아왔던 일. 경찰들의 이불 창고에 갇혀 있다가 불을 내고 난 다음에야 풀려났던 일 등 숱한 고생을 겪었다. 그렇게 피눈물의 투쟁을 한 결과 얼마나마 자식의 목숨값이라며 보상금을 받았다. 그 돈으로 딸들을 다 결혼시켰다. 이제 아버지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글, 그림 최나란)

a 5.18 그림전 [민청진 분]  아들을 잃고 유족회 활동을 통해 받은 돈도 딸들을 결혼 시키는데 다 썼다. 이제 아버지에게는 남은 것이 없다. 아들에 대한 짧은 기억만이 남았다.

5.18 그림전 [민청진 분] 아들을 잃고 유족회 활동을 통해 받은 돈도 딸들을 결혼 시키는데 다 썼다. 이제 아버지에게는 남은 것이 없다. 아들에 대한 짧은 기억만이 남았다. ⓒ 주철진


a 5.18 그림전 [강복원 분] 어머니는 총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죽었다는 곳으로 달려갔다. 군인들이 가로막았지만 무서운 줄도 모르고 쓰러져 있는 버스 속에 들어가 시체들을 뒤집었다. 운전석에 숨져있는 아들 시신을 발견했다.

5.18 그림전 [강복원 분] 어머니는 총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죽었다는 곳으로 달려갔다. 군인들이 가로막았지만 무서운 줄도 모르고 쓰러져 있는 버스 속에 들어가 시체들을 뒤집었다. 운전석에 숨져있는 아들 시신을 발견했다. ⓒ 주철진


사진 중에서는 버스기사를 했던 '강복원 님'의 사연도 눈에 띈다.

[1-09 강복원 님]

"아야, 가기는 어딜 가냐? 시방 여섯 시다 밥 묵자"
"아니여. 시방 광주 사람들이 다 죽어간다네. 고속버스가 광주로 다시 들어간당게는 내가 가줘야 할 것 같어. 엄마, 걱정허지 말고 있으소."


그리고 그 날 밤 어머니 꿈에 강복원님이 나왔다. '엄마, 나 좀 찾아가 줘'라고 어머리를 불렀다. 어머니는 밤새 총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죽었다는 곳으로 달려갔다. 군인들이 가로막았지만 어머니는 무서운 줄도 모르고 쓰러져 있는 버스 속에 들어가 시체들을 뒤집었다. 운전석에 숨져있는 아들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미 굳어버린 몸을 운전석에서 어렵게 빼내 리어카에 싣고 거적으로 덮었다. 군인들이 총을 들이대며 막았지만 어머니는 얼굴을 들이밀며 울부짖었다. 그렇게 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 후 어머니는 매일 새벽 3시 반이면 일어나 강복원님의 밥을 지었다. 아들에게 뜨신 밥을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새벽이슬을 맞으며 묘지로 갔다. 동생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던 큰아들도 급기야 동생곁으로 가고 말았다. 새벽에 짓던 한 그릇의 밥이 두 그릇으로 늘어나고 어머니는 매일 새벽이슬을 맞으며 아들들을 보러 다닌다.(글, 그림 김은진, 최다운)

당시 사연속에서는 시체조차 가져가지 못하게 막았던 군인들의 모습, 아들들을 다 잃어버린 어머니의 슬픈 사연 등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참혹함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비록, 매우 작은 공간에서 열린 그림전이지만 안에 담긴 사연들은 결코 작지 않다. 희생자들의 여러 사연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고 부른다. 아마 오늘 본 그림을, 사연을 잊지 못할 것이다.

a 5.18 그림전 다양한 사연들을 담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5.18 그림전 다양한 사연들을 담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 주철진


a 5.18 그림전 [장재철 님] 다음날 새벽같이 도청으로 간 어머니는 처참한 시신을 보았다. 그러다 한 시신에 눈이 갔다. 얼굴 한쪽이 없고, 시커멓게 변한 시신이었다. 어머니는 '이 시신이 재철이라면 자기 얼굴도 못 알아본다고 하겠구나' 생각했다. 알고보니 아들이었다. 그렇다.. 아들이었다...

5.18 그림전 [장재철 님] 다음날 새벽같이 도청으로 간 어머니는 처참한 시신을 보았다. 그러다 한 시신에 눈이 갔다. 얼굴 한쪽이 없고, 시커멓게 변한 시신이었다. 어머니는 '이 시신이 재철이라면 자기 얼굴도 못 알아본다고 하겠구나' 생각했다. 알고보니 아들이었다. 그렇다.. 아들이었다... ⓒ 주철진


a 5.18 희생자들의 사연 학생회관 앞에는 5.18 희생자들의 사연을 담은 사진과 글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5.18 희생자들의 사연 학생회관 앞에는 5.18 희생자들의 사연을 담은 사진과 글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 주철진


#5.18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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