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까> 겉표지.
알렙
민주주의를 정치적 레토릭이나 권력자들 간의 힘겨루기가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고민하는 것이 절실해 보인다. 이런 점에서 김영수의 <당신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까>(알렙 펴냄)는 민주국가의 내용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을 펼쳐 보이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대의제 비판은 새겨들어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은 뜻밖에 집권여당을 소수파로 전락시키는 과감한 선택을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이 과연 민의를 진정으로 반영하는 정치를 펼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런데 저자는 아예 선거를 권력 카르텔 구조의 하나로 보는데, 이렇게 본다면 대표자로서 누구를 선택하는지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조건이 아닐 것이다. 국민의 대표자로 자처하는 수많은 정치인과 정당들이 이제까지 어떻게 국민을 배신해 왔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저자의 이런 주장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 밖에도 저자의 상상력이 미치는 영역은 광범위하다. 시간적으로는 조선시대부터 일제 식민지 시기와 현재를 포함하며, 공간적으로는 저자가 귀농한 제천시부터 북한, 아프리카의 르완다까지 종횡무진하다. 내용 중에는 저자의 개인적 체험이나 귀농한 시골에서의 참여 정치 뿐 아니라 조선 인민에게 일제가 과연 악이었는가라는 도발적인 문제제기까지 있다. 기층 민중의 관점에서 사회계약의 정당성을 재검토해 보려는 시도였으리라.
특히 헌법을 전공한 나로서는 르완다 헌법 제143조의 가차차 재판 제도의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지은이의 소개대로 가차차는 '잔디가 깔린 광장'을 의미하고, 국민이 직접선거로 선출한 천여 명의 재판관들이 재판을 진행한다.
현재 우리의 사법체계에서는 시험을 거친 엘리트들이 재판을 담당하지만, 가차차 재판관들은 주로 마을이나 지역에서 덕망이 있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한다. 물론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가차차 제도를 우리 상황에서 그대로 도입하기는 힘들 듯하다. 먼저 이론적으로도 법관을 선거로 선출하는 제도와 관련하여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관계에 대한 논란이 종결되지 않았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의 판사 수는 3천여 명이 약간 안 되는데, 이들 모두에 대한 민주적 선출은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다. 다만 일정한 지위 이상의 고위 판사에 대해서는 국민의 직접 선거도 고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자도 국민이 직접 선출한 재판관이 재판하는 국민헌법재판권을 주장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제도도 생각할 수 있고, 예전 진보신당이나 이재승, 김종서 교수가 제안한 국민 헌법배심제도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이제 우리 사법제도에도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되어 있는데, 헌법재판을 헌법재판소의 9명 재판관의 헌법해석에만 맡겨놓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또한 저명한 철학자나 사상가의 주장을 책 곳곳에서 접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다소 간단하게 소개된 감이 없지 않지만, 이 책을 징검다리로 더 깊은 독서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소개된 인물들만 보더라도 분야를 가리지 않는 저자의 폭넓은 독서 범위를 알 수 있다.
물론 아쉬운 점들도 있다. 대의제와 의회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지만, 현대 정치의 핵심적 주체인 정당에 관한 내용이 부족한 점은 의외이다. 또한 헌법에 대한 저자의 관점은 부분적으로 논쟁적이라고 본다. 과거의 유신헌법이라면 몰라도 현재의 87년 헌법 자체가 국가의 범죄를 허용하는 타락한 헌법이라는 주장은 과도하다. 헌법에 대한 해석은 열려 있는 것이고, 헌법이 아니라 잘못된 해석으로 사회를 어지럽히는 국가와 권력자가 타락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헌법상 민주공화국을 구체화하고 있는 헌법 제119조 제2항의 경제민주화를 보자.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는 87년 헌법의 소중한 결과물이고, 2012년 대선 때 유력 정당과 대선 후보들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두들 경제민주화 정책을 냈으며, 현 박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박 대통령은 선거 시기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던 것과 달리 당선 몇 달 뒤인 2013년 2월 5대 국정목표에서는 경제민주화를 제외하기도 하였고, 국내 10대 그룹 총수들을 초청한 자리에서는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고 본래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도 밝힌 바 있다. 바로 이런 것이 헌법 자체가 아니라 권력자가 헌법의 규정을 왜곡하는 타락한 해석의 하나이다.
그렇지만 이 책의 미덕은 그런 정치한 논리나 이론이 아니고, 저자가 반복해서 주장하는 대로 '민주국가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력'이라는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상상력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민주국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독자들도 민주국가에 대한 내용과 형태를 상상하고 제시하는 것으로 앞으로 우리가 선택할 민주국가 개념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 책이 모범 답안이 아니라 민주국가 개념의 문을 여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역할을 한 셈이다.
당신은 민주 국가에 살고 있습니까
김영수 지음,
알렙,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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