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청 추모공간엔 유독 이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지유석
이번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라고 하자, 한바탕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공권력 역시 여성 혐오 보다는 정신질환자의 일탈행위로 몰아가려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사건의 본질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언론에서 다뤘기에 더 이상의 말은 불필요하다고 봅니다.
전 다른 문제를 하나 지적하고자 합니다. 우리 사회가 가장 기본적인 인간성조차 상실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입니다.
한 명의 여성이 스물 셋의 나이에 일면식도 없는 범인에게 희생당했습니다. 범인은 여성을 의도적으로 범행대상으로 정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한 여성의 죽음에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아파하고 그 죽음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일각에서는 '남성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지 말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사건 현장에서는 볼썽 사나운 광경마저 벌어졌습니다.
이번 사건이 '선량한' 남성들에겐 다소 불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남성이 약자인 여성을 의식적으로 노려 범행을 저질렀다면, 뭇 남성들은 '나 역시 잠재적 가해자'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봤어야 합니다. 제가 도덕성이 탁월해서 이런 말 하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한 인간으로서 취해야 하는 자연스런 감정의 발로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번 사건의 희생자는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고, 누군가의 소중한 친구고, 우리 사회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었습니다. 따라서 공동체 전체가 어처구니없는 증오범죄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책임 있는 태도를 취했어야 함에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정신분열증에 따른 망상'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이런 결론은 쉽사리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범인이 정신분열증이 있다면 최고의 정신과 전문의들로 의료진을 꾸려 정상으로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깨닫게 해야 합니다. 처벌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많이 늦었지만, 희생자 분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그저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