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남해로 내려왔다. 2016년을 다시 시금치로 시작한다. 근 한달을 피해다녔으나 더 이상 숨을 곳이 읍다. 즐기자. ㅋㅋ - 허기저(안병주) 님의 페이스 북 글
안병주
이곳 남해에서는 내가 낯선 사람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궁금해하지만 선뜻 말을 건네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눈빛들이 영 부담스럽다. 그래서 먼저 인사를 하면 그제야 '어데서 왔능가' 묻는다. 이웃 할머니는 '젊은 사람이 사업 실패할 수도 있지!' 하시면서 '여기서도 먹고 살 만하니 열심히 살라'는 위로 아닌 위로도 건넨다.
이런 대화는 웃음으로 퉁 치지만, 밭일 조금 도와 드리고 얻어먹는 고봉밥과 술은 웃음은커녕 집에 와 배를 움켜쥐기 일쑤다. 이른 아침, 문 여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면 무가 쌓여 있고, 일 갔다 들어오면 반찬거리가 덩그러니 툇마루에 놓여 있다. 익명의 환대가 아직은 낯설다.
시골살이가 기분 좋은 환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계의 눈빛은 여전하고, 서로를 헐뜯는 말들이 사람들을 갈라놓는다. 생존의 전장에서 다른 이의 이득은 자신의 불이익으로 여긴다. 시금치 경매장에서의 자리싸움은 도리어 귀엽게 느껴진다.
중학교가 공부 안 시키는 학교로 바뀌었다며, 먼 곳으로 전학을 시킨다. 험한 뱃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밖에서 볼 수 없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 도망친 이주여성들 소식도 간간이 들린다. 이곳도 삶은 경쟁이고, 낯선 이들에 대한 불신이 많다. 환상은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아직 텁텁하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오렌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익숙한 오렌지가 아니라 낯선 오렌지를 보고 싶지 않았다. 쓰러진 지 일주일, 이건희가 썼다던 그 비싼 장비를 치렁치렁 달고 있는 오렌지는 낯설었다. 기계가 숨을 쉬는 건지 사람이 숨을 쉬는 건지 '쉬익 쉬익' 소리로 아직은 살아 있구나, 싶었다.
다시 일어나면 잘 해줄 거라 헛된 다짐만 몇 번을 했다. 결국 오렌지는 우리 곁을 떠났다. 익숙한 자신보다는 낯선 이들에게, 지금 살아 숨 쉬는 낯선 사람들에게 더 잘해주라며 가버렸다. 오렌지가 그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찍고 싶은 것들이 사회에서 낯선 사람 취급받는 사람들이었기에 더 그렇다.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가, 오렌지 덕분에 돌아본다.
6월 10일, 오렌지를 만나러 가야겠다. 오렌지가 하늘로 가기 전 나에게 준, 익숙한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낯선 오렌지를 만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