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5월 3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국내일정을 마치고 출국하고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반 총장의 재임 4년 뒤, 유엔 및 국제문제 전문기자로 명성이 자자한 마크 레온 골드버그의 평가를 들어보자. "왜 반기문은 사무총장에 재선되어야 마땅한가(Why Ban Ki Moon Deserves a Second Term as Secretary General)"라는 칼럼을 통해 그는 반기문 사무총장을 자세히 얘기한다.
유엔사무총장이란 제약이 많은 자리임을 전제한다. 주요 국제현안에 대한 결정권이 없고, 분쟁 당사국에 유엔의 권유를 채택하도록 압력을 행사할 수도 없단다. 실질적인 파워는 유엔 창설멤버 강대국들에게 있다면서 "이러한 제약들 내에서 유엔 운영을 얼마나 잘했는가에 대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반 총장의 실적(record)은 강하다(strong)"고 덧붙인다.
리비아와 아이보리코스트 문제를 예로 들었다. 반기문은 9천 유엔평화군을 파견, 유엔으로서는 거의 보기 드문 미사일 공격을 명령하는 등 아이보리코스트 독재자 로랑 그바그보를 체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아이보리코스트의 내전을 막았다. 반기문의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유엔군 업무를 성공시켰음을 그는 강조한다. 리비아 사태에서도 그는 카다피가 정통성(legitimacy)을 상실했다는 점을 아주 명료하게 기자들에게 얘기함으로써 2주 뒤에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 군사개입을 결정토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유엔 사무총장이 휘두를 수 있는 실질적인 파워는 어떤 이슈를 '전 지구촌 차원(High Level Events)'으로 설정해 국제사회로부터 주목을 끌게 하는 것이라면서 "반 총장은 지난 5년 동안 지구촌의 선(善)을 위해 그러한 소집권(convening power)를 효과적으로 이용했다"고 덧붙인다.
예를 들면, 지구촌 기후문제를 다룰 코펜하겐기후변화회의 개최의 결정적 계기를 반 총장이 마련했다면서 "그는 미국 대통령, 중국 수상, EU나 G-77 미팅 방법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세계 지도자들을 UN으로 데려와 기후변화 문제를 지구촌 톱 어젠다로 설정케 했다"고 강조한다.
또한 지구촌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산모건강과 남녀평등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그는 국제사회에서 존경받아왔던 록스타이자 전 칠레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를 임명함으로써 유엔 내 시니어 리더십 포지션을 떠맡는 여성들의 숫자를 40% 올려놓았다고 격찬한다. 또한 산모문제에 대해 반 총장은 자신의 파워를 이용하여 국제사회의 지원확약을 받아내 'Every Woman, Every Child(에브리 우먼 에브리 차일드)' 미팅을 통해 400억불의 후원금 약정을 기부국들로부터 받아냈다. 또, 본 자금의 수혜국인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가 1인당 $10.92에서 $15를 공적으로 사용하고, 방글라데시는 조산보조원을 늘려 출산율을 배로 늘리겠다는 언약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이런 찬사와 함께 여러 제약 속에서도 반 총장이 선택한 이슈들은 국제사회가 직면해 있는 가장 시급한 도전적인 문제들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가 유엔을 5년 더 이끌 자격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코노미스트지의 반기문 혹평에 대해 동지에 최근 기고한 스테판 두자릭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의 반박 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마크 레온 골드버그 기자의 호평과 비슷하다. 그의 평가는 대략 이렇다(관련기사:
반기문 측, '실패한 총장' 이코노미스트 혹평에 반론).
"독자들은 반 총장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알 필요가 있다"면서 "반 총장이 전 세계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했고, 결실을 이뤘다" "반 총장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적 합의를 도출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 인권 문제에도 앞장섰다" "여성을 고위직 임원으로 대거 등용하며 유엔의 유리천장을 없앴다" "유럽의 인종차별과 아프리카의 성적 소수자 박해, 이란의 대량학살 부인 등의 이슈에서 인권을 옹호했고, 유엔평화유지군의 조직을 강화해 유엔을 현대화하면서도 조직을 간소화하고 투명하게 재정을 지출하여 유엔을 효율적으로 운영했다" "그는 유엔이 원조한 전쟁 피해국인 한국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진실 되게 말했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전 세계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과 연결됐다."시사저널의 김경민 기자의 보도도 흥미롭다(관련기사:
반기문 혹평한 이코노미스트를 직접 보니...).
"그는 예의 바르고 완강한 인물이었다. 새로운 개발 과제를 세우고 지난해 12월 파리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 …(중략) 총평하자면 반 총장은 유엔이 지닌 내재적 한계를 온몸으로 보여줬다. 그는 최소한의 공통분모에 속하는 분쟁문제에만 개입했다. 그가 사무총장이 된 건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 중 누구도 반대할 만한 이유가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이코노미스트의 평가를 바탕으로 반 총장에 대한 평가를 조금 더 정확히 내리자면 '철저히 유엔이 가진 태생적 한계 속에서 원칙을 고수하며 일해 왔다' 정도일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반 총장의 방식은 전임이었던 코피 아난 전 총장의 업무 방식과 극명히 대조되는 것이었다.
반기문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코노미스트지만 유일하게 그를 폄훼하는 이유는 뭘까? 내가 갖고 있는 심증으로는 반기문은 이스라엘에게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일 수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을 두고 반기문이 격노한 바 있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비인도적인 처사라며 주위의 모든 협박(?)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강력히 비난했던 것이다.
그의 그런 언행은 강단없는 지도자 같으면 어림도 없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자 샌더스의 주장도 반기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샌더스에 대한 젊은층 유권자들이 열광하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에 심정적 애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코노미스트지가 반기문의 영웅적 인도적 발언을 드러내 놓고 호평할 수는 없었을 거다.
국내 언론과 논객들의 주장은 이코노미스트지의 혹평을 여과 없이 전했다. 특히 언론사마다 내보낸 사설과 칼럼은 자기 진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야권은 대체로 반(反)반기문 대통령이다. 조국 교수가 야권 진영의 시각을 대표적으로 드러냈다.
추측·예단보다는 반기문의 실적과 리더십 살펴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