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에서 잔잔한 감동을 전하는 책

[느낌 있는 신간] <눈으로 하는 작별> <문장의 품격>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등록 2016.06.22 14:28수정 2016.06.2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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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하는 작별>, 룽잉타이/ 양철북

 <눈으로 하는 작별>의 겉표지.
<눈으로 하는 작별>의 겉표지.양철북

아침마다 어딘가로 달려가기에 바쁜 우리들. 식탁 앞에 부스스한 얼굴로 마주보지만, 눈빛 한 번 맞출 여유가 없다. 모래알 같은 밥알이 혀끝에 거칠게 부딪힌다.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해야 할 부담감과 오늘 안에 끝내야 할 일들이 숟가락과 젓가락을 바쁘게 끌어당긴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에 걸어둘 쉼표와 느낌표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 에세이집에는 우리가 놓쳐버린 어떤 순간들이 담겨 있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유자나무 꽃향기에 고개를 돌리고, 문득 시선을 들어 해질녘 하늘을 바라보며, 늙은 부모의 얼굴 속 달라진 눈빛을 알아챈다. 일상의 범주에서 퍼져나가는 사색의 시간들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마음을 흔든다.

작가 룽잉타이는 중화권에서 '지식인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에 선정될 만큼 존경받는 작가다. 그녀가 써내려간 문장들은 소박하면서도 번뜩이는 통찰력을 드러낸다. 중국 본토에서 타이완으로 이주해온 부모의 삶 속에서 확인되는 역사적인 사건들. 두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부딪히는 일상적인 순간들. 끝내 이별할 수밖에 없는 부모와 자식 사이. 그녀가 살아낸 삶의 무늬가 책장 사이사이로 은은하게 번진다.

- 책 속 이 문장

알 수 없다. 사람은 같은 '꽃' 앞에 서서, 서로 다른 모습들을 그려내고 서로 다른 빛깔을 찾아내는 존재니까.

<문장의 품격>, 안대희/ 휴머니스트

 <문장의 품격> 겉표지
<문장의 품격> 겉표지휴머니스트

조선의 문장가에게 배우는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 이 책의 부제다. 저자는 이 책에 소개된 조선시대 7인의 문장가를 '조선의 파워블로거'로 비유한다. 격식과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남다른 주제의식과 감각으로 생생하게 써내려간 글이라는 뜻이다.

고문 중심의 문단에 새로운 문장의 길을 개척해나간 소위 '문단의 혁명가'들이다. 더불어 이 책 속엔 가난을 등에 지고 오롯이 '문장의 품격'을 지켜낸 문장가들의 일상을 쫓아가는 재미도 있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인 허균은 <한정록> 서문에서 사십대의 자신을 이렇게 돌아봤다. '털끝만한 이익이나 손해에 넋은 경황이 없었고, 모기나 파리 같은 자들의 칭찬이나 비방에 마음은 요동을 쳤다.' 얼마나 거리낌 없이 솔직한가.

남인 명문가에서 태어난 이용휴는 벼슬을 포기한 채 재야에서 전업 작가의 삶을 살았다. <환아잠(還我箴)>은 제자에게 준 잠언으로 운문에 가깝다. '옛날의 나를 잃게 되자/ 진실한 나도 숨어버렸다./ 일 꾸미기를 좋아하는 자가 있어/ 돌아가지 않는 나의 틈새를 노렸다.' 어떤 틈새에서 허우적대는 자아를 되찾으려는 노력은 18세기나 21세기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자신을 책만 아는 바보라고 자칭한 이덕무. 시에도 다양한 맛이 있다고 외치는 박제가. 신분 차이라는 금기를 무너뜨리는 낭만적 사랑을 갈구한 이옥. 수상가옥에서 낚시를 하며 살아가고픈 심정을 토로한 정약용. 끝으로 박지원의 미문을 '책 속 이 문장'에 소개한다. 큰 누님을 잃고 쓴 제문 중에서, 시집가는 누이와 강변에서 헤어지던 때를 떠올리며 쓴 문장이다.

- 책 속 이 문장

그때 강가에 멀리 나앉은 산은 시집가던 날 누님의 쪽찐 머리처럼 검푸르고, 강물 빛은 그날의 거울처럼 보이며, 새벽달은 누님의 눈썹처럼 보였다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위화/ 문학동네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의 겉표지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의 겉표지문학동네

책을 홍보하는데 책표지만큼 중요한 공간은 없다. 책 표지에 대한 디자인이나 제목과는 별도로 부제를 다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시선이라도 더 끌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부제 '작가 위화가 보고 겪은 격변의 중국'은 조금 엉뚱하다. 전체 분량에서 이 부분은 극히 미비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책은 위화라는 작가의 사생활에 치중해 있다. 창작에 대한 사색의 글과 감명 깊게 읽은 책, 창작 일기가 주를 이룬다. 

작가 위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작가의 일상과 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종합병원 치과에서 레지던트를 했던 1980년, 스무 살이었던 그는 처음 문학에 빠져들었다. 10년 동안 손으로 글을 쓰다 1993년부터 컴퓨터로 글을 썼다. 그 사이 오른 손 식지와 중지 사이에 박혀버린 굳은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문화대혁명 이후 격변하는 중국 문단에서 작가의 삶을 살아온 위화의 시선은 폭넓다. 중국 사회를 '하나의 나라, 두 개의 세계'로 명명한다. '가정의 가치 추락 및 개인주의의 대두'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위층에서 나는 전기드릴 소리와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에 대한 '7일간의 일기'를 기록한다. 다소 의외지만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관람 후기도 일기 형식으로 소개한다.

- 책 속 이 문장

상상력의 길이는 모든 경계를 지워버릴 수 있다. 독서와 독서 사이의 경계, 독서와 생활 사이의 경계, 생활과 생활 사이의 경계, 생활과 기억 사이의 경계, 기억과 기억 사이의 경계...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
덧붙이는 글 <눈으로 하는 작별> 롱잉타이/ 도희진 옮김/ 양철북/ 값 14000원
< 문장의 품격> 안대회/ 휴머니스트/ 값 15000원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위화/ 이욱연 옮김/ 문학동네 / 값 13500원

눈으로 하는 작별 - 가족, 일상, 인생, 그리고 떠나보냄

룽잉타이 지음, 도희진 옮김,
양철북, 2016


#<눈으로 하는 작별> #<문장의 품격>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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