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품격> 겉표지
휴머니스트
조선의 문장가에게 배우는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 이 책의 부제다. 저자는 이 책에 소개된 조선시대 7인의 문장가를 '조선의 파워블로거'로 비유한다. 격식과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남다른 주제의식과 감각으로 생생하게 써내려간 글이라는 뜻이다.
고문 중심의 문단에 새로운 문장의 길을 개척해나간 소위 '문단의 혁명가'들이다. 더불어 이 책 속엔 가난을 등에 지고 오롯이 '문장의 품격'을 지켜낸 문장가들의 일상을 쫓아가는 재미도 있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인 허균은 <한정록> 서문에서 사십대의 자신을 이렇게 돌아봤다. '털끝만한 이익이나 손해에 넋은 경황이 없었고, 모기나 파리 같은 자들의 칭찬이나 비방에 마음은 요동을 쳤다.' 얼마나 거리낌 없이 솔직한가.
남인 명문가에서 태어난 이용휴는 벼슬을 포기한 채 재야에서 전업 작가의 삶을 살았다. <환아잠(還我箴)>은 제자에게 준 잠언으로 운문에 가깝다. '옛날의 나를 잃게 되자/ 진실한 나도 숨어버렸다./ 일 꾸미기를 좋아하는 자가 있어/ 돌아가지 않는 나의 틈새를 노렸다.' 어떤 틈새에서 허우적대는 자아를 되찾으려는 노력은 18세기나 21세기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자신을 책만 아는 바보라고 자칭한 이덕무. 시에도 다양한 맛이 있다고 외치는 박제가. 신분 차이라는 금기를 무너뜨리는 낭만적 사랑을 갈구한 이옥. 수상가옥에서 낚시를 하며 살아가고픈 심정을 토로한 정약용. 끝으로 박지원의 미문을 '책 속 이 문장'에 소개한다. 큰 누님을 잃고 쓴 제문 중에서, 시집가는 누이와 강변에서 헤어지던 때를 떠올리며 쓴 문장이다.
- 책 속 이 문장
그때 강가에 멀리 나앉은 산은 시집가던 날 누님의 쪽찐 머리처럼 검푸르고, 강물 빛은 그날의 거울처럼 보이며, 새벽달은 누님의 눈썹처럼 보였다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위화/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