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도 못가보다니...갑자기 낮술이 '확' 땡긴다

백야도 손두부집, 허름하지만 정겨움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곳

등록 2016.06.23 14:28수정 2016.06.2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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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부부가 직접 만든 따끈한 손두부에 막걸리 한 사발이 온몸을 적신다.
노부부가 직접 만든 따끈한 손두부에 막걸리 한 사발이 온몸을 적신다. 조찬현

바람결이 좋다. 백야도로 향한다. 참 오랜만이다. 예전엔 늘 다니던 곳이었는데 오랜만에 이 길을 달리다보니 모든 게 새롭다.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여행이 별거 있어, 이렇게 마음 내킬 때 훌쩍 떠나면 되는 거지. 사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변변한 여행 한 번 해보질 못해 지금껏 여행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았다.


가족을 위해서는 참 한심한 가장이다. 다른 집들은 제주도는 기본이고 해외까지 매년 넘나드는데, 제주도도 아직 못가 본 난 아마도 별종이겠지. 이쯤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낮술이 확 땡긴다. 오늘은 낮술 한 잔 해야겠다. 어찌 보면 이것 또한 핑계거리다.

낮술... 낭도 젖샘막걸리 한 사발

  고샅길에는 빨간 접시꽃이 환하게 피었다.
고샅길에는 빨간 접시꽃이 환하게 피었다. 조찬현

백야도 손두부집이다. 몇 해 만에 다시 찾았는데 예전 모습 그대로다. 고샅길에는 빨간 접시꽃이 환하게 피었다. 길가에는 부지런한 농부가 따다 놓은 옥수수 망태기도 보인다. 허름한 가게는 정겨움이 덕지덕지 묻어난다. 예전에 가게 페인트칠하고 내부 수리한다기에 주인장에게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해달라고 떼를 썼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옛 모습이 오롯하다.

추억도, 옛 모습도, 자고 나면 다 사라지는 급변하는 세상, 변화만이 능사는 아니다. 막걸리 맛은 자고로 이런 분위기가 좋다. 세월이 잠시 멈춰선 공간이 좋다. 옛 추억이 있고 그리움이 있어야, 막걸리 한 사발에 시시껄렁한 시 한 줄이라도 흥얼거리지.

 낭도 젖샘막걸리와 백야도 손두부다.
낭도 젖샘막걸리와 백야도 손두부다. 조찬현

 손두부와 곰삭은 배추김치가 잘 어울린다.
손두부와 곰삭은 배추김치가 잘 어울린다. 조찬현

낮술(낭도 젖샘막걸리) 한 사발을 단숨에 걸쳤더니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가 문득 되살아난다. 제주도에 발 한번 디뎌본 적이 없는 내가 이런 시를 읊조린다는 게 좀 생뚱맞긴 하지만.


성산포의 이 시인은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는데 내가 찾은 백야도에서는 '술은 바다가 마시고 취하긴 내가 취한다. 백야도에서는 바다보다 사람이 술에 더 약하다.'

 무심한 백야도의 바다는 고요하기만 한데 난 이렇게 한낮에 출렁이고 있다.
무심한 백야도의 바다는 고요하기만 한데 난 이렇게 한낮에 출렁이고 있다. 조찬현

무심한 백야도의 바다는 고요하기만 한데 난 이렇게 한낮에 출렁이고 있다. 낮술에 취하면 애비 애미도 못 알아보는 후레자식이 된다는데, 제기랄 조심해야겠다.


올 여름에는 막걸리 투어라도 해야겠다. 젖샘이 솟아나는 낭도 주조장에도 한번 가보고, 사또약수터 부근 광양의 겉저리 무침 잘하는 아짐 얼굴도 한 번 봐야겠다. 순천 공고 앞 고흥식당에 앉아 갓 삶아낸 수육 한 접시에 막걸리 한 사발은 또 어떨까.

 세월이 잠시 멈춰선 공간이 좋다.
세월이 잠시 멈춰선 공간이 좋다. 조찬현

 옛 추억이 있고 그리움이 머물고 있는 백야도 손두부집이다.
옛 추억이 있고 그리움이 머물고 있는 백야도 손두부집이다. 조찬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 블로그 '맛돌이의 오지고 푸진 맛'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낭도 젖샘막걸리 #백야도 #손두부 #맛돌이 #낮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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