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한의 유물에서 중국을 느끼다

[중국의 고대문화 들여다보기 ⑮] 섬서역사박물관 1

등록 2016.06.24 16:21수정 2016.06.2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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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서역사박물관 로비
섬서역사박물관 로비이상기

섬서역사박물관은 중국 고대문명의 진귀한 보물들을 보존 전시하고 연구하는 중국 최고의 박물관으로 1991년 6월 개관했다. 6만 5000㎡의 대지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건물 면적만 해도 5만 5600㎡가 되는 대형 박물관이다. 역사 유물보관실은 8000㎡, 전시관은 1만 1000㎡이며, 모두 37만 5천 점의 유물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우리는 신석기시대부터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 한, 당에 이르는 가치있는 문화유산들을 볼 수 있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건물에 상설 전시실(1/2층), 특별 전시실, 임시 전시실, 수장고 등이 있다. 그동안 특별 전시로는 청동기진품전(靑銅器珍品展), 도용정화전(陶俑精華展), 능묘(陵墓) 벽화와 유물전, 대당유보특별전(大唐遺寶特別展) 등이 개최되었다. 그리고 2011년 6월에는 당대벽화진품관(唐代壁畵珍品館)을 열어 당나라 때 묘장벽화를 일괄 전시하고 있다.


고대문명을 알려면 섬서역사박물관으로 가라

 상나라 때 청동기
상나라 때 청동기이상기

전시실은 연대별로 선사시대에서 주(周)나라,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때까지를 전시하고 있는 제1전시실(古代史陳列), 한에서부터 위·진·남북조시대까지를 전시하고 있는 제2전시실, 그리고 수, 당, 송, 원, 명, 청대에 걸친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제3전시실로 나뉜다. 수장품은 청동기, 금은옥기, 도용, 화폐, 도자기, 기와 등으로 나눠서 전시되고 있다.

청동기로는 주나라와 상(商)나라 때 매미 무늬 세발솥(西周蟬紋鼎), 새 모양 뚜껑을 가진 조롱박형 술병(鳥蓋瓠壺), 악기 작종(柞鐘), 취사도구인 세발솥 외숙정(外叔鼎), 네발솥 사족력(四足鬲), 술 담는 용기인 봉주가(鳳柱斝), 소 모양 술 용기(牛形尊), 전국시대 두호부(杜虎符), 서한(西漢) 시대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는 모습을 담은 청동 장식패(銅飾牌), 청동제 기러기등(銅雁魚燈)이 유명하다.

 한나라 때 은제 사슴
한나라 때 은제 사슴이상기

금은옥기로는 춘추시대 금탁목조(金啄木鳥), 금개(金犬), 한나라 시대 죽절문 동향로(竹節銅薰爐), 금괴수(金怪獸), 은제 호랑이(銀虎), 은제 사슴(銀鹿), 당나라 시대 금잔과 은잔, 금수 수마노잔(金獸首瑪瑙杯), 은반, 은항아리, 은으로 만든 새장, 당고조비(唐高祖妃) 여황후(呂皇后) 옥새, 황금주룡(赤金走龍)이 유명하다.

도용으로는 병마용, 시녀용, 호인용(護刃俑), 묘수(墓獸), 문관용, 무관용, 천왕용(天王俑), 말탄 여인용(女騎俑), 상박용(相搏俑)이 있다. 화폐로는 전국시대 도폐(刀幣), 포폐(布幣), 금폐(金幣), 서한시대 금오수(金五銖), 옥오수(玉五銖), 당나라 시대 금폐 개원통보(開元通寶), 은폐, 일본 은폐 화동개보(和同開寶), 고창국 고폐(古幣) 고창길리(高昌吉利)가 있다.


 신석기시대 채도
신석기시대 채도이상기

도자기는 그 역사가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창기에는 도기가 사용되었으나, 당나라 때부터 자기가 궁중을 중심으로 사용된다. 자기는 색깔에 따라 청자와 백자로 대별된다. 그리고 모양과 용도에 따라 반(盤), 호(壺), 병(甁), 완(碗)으로 구분된다. 와당은 기와를 말하는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것은 대개 막새 기와다. 이들 와당은 문양에 따라 꽃 무늬, 동물 무늬, 새 무늬, 사신(四神) 무늬, 용 무늬 기와로 나눠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인물이나 명문이 들어가기도 한다.

진나라 때 병마용이 이곳에도 있다


 주나라 때 타화(駝?)
주나라 때 타화(駝?) 이상기

우리는 제1전시실에 있는 유물부터 순서대로 살펴본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신석기시대 채도(彩陶)다. 바탕색이 붉은 홍도(紅陶)도 보인다. 손잡이가 달린 도기도 보인다. 전체적으로 채도에서 예술성이 느껴진다. 역사가 오래된 것으로는 옥으로 만든 사람 얼굴이 있다. 기원전 1만-4000년경 작품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3000년경 만들어진 세발 달린 도기솥(陶鬲)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 

도기 다음에는 청동기가 전시되어 있다. 취사용기인 사족력과 술 담는 용기인 봉주가가 기원전 13-11세기 상(商)나라 때 작품이다. 청동기부터는 작품에 예술성이 두드러진다. 기원전 9-8세기에 만들어진 세발 달린 솥 외숙정은 주(周)나라 때 작품이다. 손잡이와 뚜껑 그리고 술이 나오는 입구가 따로 만들어진 술그릇 타화(駝盉)는 정말 예술성이 뛰어나다. 손잡이에는 용이, 주둥이에는 낙타가, 뚜껑에는 봉황이 조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국시대 조롱박형 술병
전국시대 조롱박형 술병이상기

다음부터는 춘추전국시대 유물이다. 나는 먼저 기원전 770~476년경 춘추시대 와당을 살펴본다. 동물 무늬가 새겨진 와당이 많다. 사슴도 보이고, 새도 보이고, 표범도 보인다. 이들은 모두 돋을새김으로 표현되었는데, 대단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사람 얼굴을 그린, 격자 무늬를 한 기와도 보인다. 춘추전국시대부터는 청동기와 함께 금은기도 만들어진다.

대표적인 청동기로는 새 모양 뚜껑을 가진 조롱박형 술병이 있다. 전국시대인 기원전 475~221년 작품이다. 금은기로는 금으로 만든 동물인 금탁목조, 금개가 있다. 그런데 금은 세공술이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정교함이나 세밀함이 후대 한나라나 당나라에 비해 떨어진다. 중국 문화유산의 예술성은 한나라 이르러서야 완성되는 것 같다. 

 박물관의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의 진시황 병마용이상기

진나라 때 유물로는 진시황 병마용이 일부 이곳에 전시되고 있다. 가운데 네 마리 말이 있고, 앞뒤에서 보병이 각 5명씩 두 개 오(伍)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갑옷을 입은 무사용으로 키가 1.8~2m이다. 그러므로 사람들보다는 조금 큰 편이다. 말은 높이가 1.7m, 길이가 2m 정도 된다. 병마용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은 여기 밖에 없다.

한나라 와당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다

 한나라 와당
한나라 와당이상기

한나라가 이룩한 문화와 예술을 그들은 웅장하다고 말한다. 한자식으로 표현하면 대한웅풍(大漢雄風)이다. 진나라에서 시작된 대담한 스케일이 한나라에 와서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시물을 보면 웅장하다기 보다는 세밀하고 정교한 편이다. 그것은 와당과 금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와당은 선형으로 표현해 세밀하고 기하학적인 느낌이 든다. 그리고 금은기는 세부장식이 많아져 예술성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와당은 명문(銘文) 와당이 많은 편이다. 글씨가 전서체로 쓰여 있어 기하학적이고 읽기는 어렵지만, 예술성이 느껴진다. 명문 외에 구름 무늬(雲紋)와 사신 무늬(四神紋)가 보인다. 구름은 비가 되어 내리기 때문에, 풍요와 상서로움의 상징으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사신은 청룡, 백호, 주작, 현무로 동서남북 사방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삶의 공간인 집에 이들 사신문 와당을 배치했을 것이다.

 사신문 와당: 백호와 현무
사신문 와당: 백호와 현무이상기

명문 와당은 궁전 기와에 주로 사용했던 것 같다. 그것은 명문에 궁(宮)이라는 글자가 자주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용된 글자도 왕조의 번창과 왕족의 무병장수와 행운을 기원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면 한개천하(漢開天下), 천추만세(千秋萬歲), 장락부귀(장락부귀), 영보국부(永保國阜)가 있다.

한개천하는 한나라가 천하를 열었다는 뜻이다. 천추만세는 한나라가 천년만년 지속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표현했다. 장락부귀는 오래도록 즐겁게 부귀를 누리며 살자는 뜻이다. 영보국부도 나라가 영원이 보전되기를 바라는 염원이다. 한나라 와당에는 이처럼 네 자 명문이 가장 많은 편이다. 그렇지만 한 자, 두 자, 여덟 자 명문도 보인다. 여덟 자 명문은 네 자 명문을 연결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천추만세여천무극(千秋萬歲與天無極)이 있다. 가장 긴 경우 열두 자 와당도 있다고 한다.

 북위시대 기마무사용
북위시대 기마무사용이상기

그리고 흙을 구워 유약을 칠한 형태의 도용(陶俑)도 볼만하다. 도용은 무덤에 묻는 명기(冥器)로 만들어졌다. 사후 세계에서도 무덤의 주인이 이들의 호위를 받거나 시중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 도용은 인물과 동물로 이루어진다. 인물용은 시녀용, 무사용, 기마용이 대표적이다. 동물용으로는 말이 대부분이다. 이들 도용에는 붉은 색과 녹색이 입혀지기도 했다. 이들에 대해서는 황유 또는 녹유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북조시대 불상 이야기

 법문사 진신보탑
법문사 진신보탑이상기

중국에서 불교는 한나라 때 처음 받아들여졌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한나라가 서역으로 영토를 넓히려 했고, 그 과정에서 인도와 교류를 했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 인도의 신흥종교인 불교가 자연스럽게 중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불교는 그 후 황실의 보호를 받게 되었고, 국가의 지원으로 동한(東漢)시대부터 대규모 절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것이 낙양의 백마사, 장안의 법문사다. 당시는 부처님의 사리와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탑을 세우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4세기말 북조시대 불상과 경전이 대거 유입되면서, 역경(譯經)과 홍법(弘法)이 중요해졌다. 이때부터 중국의 불교는 그만의 방법으로 포교를 하고, 그들만의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먼저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새로운 용어와 개념을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인물이 구자국 출신의 승려 구마라집이다. 그리고 간다라, 마투라 양식과는 다른 북조시대 특유의 불상을 제작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북위시대 불상이다.

 북위시대 삼존불
북위시대 삼존불이상기

 북주시대 삼존불
북주시대 삼존불이상기

재질은 금동불, 석불, 옥불로 나눠지고, 존상은 독존이나 삼존 형태가 대부분이다. 금동불의 경우는 주물형태로 만들어선지 조각이 섬세하고 화려하다. 그리고 부처님의 상호도 긴 편이다. 이에 비해 석불이나 옥불은 통돌을 사용, 부처님을 조각했다. 후대로 갈수록 부처님의 상호에서 미소가 느껴지고 원만구족해진다. 그것은 북위시대(386~534) 초기 석가모니삼존불과 북주시대(557~581) 석가모니삼존불을 비교하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섬서역사박물관 #청동기 진품 #금은옥기 #한나라 와당 #북조시대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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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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