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하의 산문집 <피었으므로, 진다> 표지.
쌤앤파커스
여기 한 시인이 있다. 혁명과 해탈 사이에서 일생을 떠돈. 이륭과 이산하라는 2개의 필명을 가졌던 사내. 본명은 이상백.
1960년 경상북도 영일 출생이니 현재 나이 56세. 부산 혜광고등학교 재학 시절, 후배 시인 안도현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학생 대상 백일장의 절반을 독식했다. 상장 수십 개가 가난한 문학청년이었던 그를 경희대학교 문예장학생으로 만들었다.
1980년대는 당연지사 그가 시만 쓰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세칭 '운동권 학생'이 되어, 지하신문을 만들고 시위현장에서 돌을 던졌다. 수배가 떨어졌고 '죄 없는 도망자'로 몇 년을 살았다.
그 시절, 목숨을 담보해 쓴 시집이 노란 유채꽃 위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한라산>. 불의한 독재정권은 '순정한 시를 쓰고 싶어 했던' 겨우 스물일곱 청년을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반란수괴'라는 죄명을 씌워 구속한다.
이른바 '한국의 양심적 지식인들'도 증인으로 법정에 서는 걸 거부했던 살벌한 '한라산 필화사건'. 감옥을 나온 이산하는 제주도를 방문해 4·3항쟁에서 살아남은 자들로부터 '학살의 증언'을 듣고는 붓을 꺾어버린다. 시는 혁명의 무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땅을 쳤다. 그가 다시 시를 쓰게 되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다.
혁명을 꿈꾼 시인이 적요한 절을 찾아다닌 이유는?서두가 장황해졌다. 바로 그 이산하가 새 책을 냈다. '시인의 산사기행(山寺紀行)'이란 부제가 붙은 산문집이다. 이름하여 <피었으므로, 진다>(쌤앤파커스). "일생 비종교적 관점에서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을 해온 사람이 왜 갑자기 절을 찾아다닌 거야?" 일부 독자는 뜨악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이산하를 절반만 아는 이들의 푸념일 듯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다수가 행복한 사회를 꿈꾸는 혁명과 세속초월 지향의 승려들이 꿈꾸는 해탈은 이음동의어다. 다르게 발음되지만 실제로는 같은 뜻을 가진 단어. 젊은 날 이산하는 혁명을 꿈꾸며 청춘의 눈물과 주먹을 소비했다. 이제 지천명을 넘어 이순으로 가는 그는 고요한 산그늘 아래 적요한 풍경소리 울리는 절에서 무엇을 찾고자 했을까?
사실 이 글은 '친절한' 책 소개 기사는 아니다. 그렇게 쓸 마음도 없다. 하지만, '불친절한' 기사 속에서도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읽어내고, <피었으므로, 진다>를 통해 '혁명'과 '해탈'에 관한 구체적 진술을 찾아내는 눈 밝은 독자가 적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정호승과 안도현은 <피었으므로, 진다>를 어떻게 읽었을까그것에 도움을 주기 위해 '눈 밝은' 이산하의 선후배 시인들이 쓴 <피었으므로, 진다>에 관한 이야기를 요약해 아래 옮긴다.
"이 산문집은 여느 절 여행기와 달리 불교에서 최고의 성지로 꼽히는 '5대 적멸보궁'과 '3보 사찰' 그리고, '3대 관음성지' 등을 골라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쓴 고감도 명상 여행에세이다. 시인의 현란한 감성과 정제된 지적 사유가 돋보이는." - 시인 정호승(이산하의 경희대 국문과 선배)"이 책은 눈부신 고요가 빚어내는 꿈결 같은 소리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지혜로운 독자라면 이 유려한 산문집 도처에 고여 있는 수백 편, 아니 수천 편의 시를 덤으로 읽게 되리라." - 시인 안도현(고교시절 이산하와 자웅을 겨루던 문학 라이벌)"북소리 따라 나를 치고 또 쳐 결국 인간의 존엄성에 이르는 시인. 그 시인의 발자국에 깊이 새겨진 적멸의 문장에 감사한다." - 시인 김주대(SNS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며, <한겨레신문> 등에 시와 그림을 연재하는 이산하의 후배)그리고, 정말이지 마지막 하나. 이산하가 대구시 수성구 물레책방에서 <피었으므로, 진다> 출간 기념 북콘서트를 연다. 7월 7일 저녁 7시다.
경북대 채형복 교수와 문학평론가 정치창 그리고 독자들이 함께 할 예정.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기자 역시 '시인 이산하의 오랜 지인' 자격으로 참여해 '내가 만난 이산하'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놓을 예정이다.
피었으므로, 진다 - 이산하 시인의 산사기행
이산하 지음, 임재천 외 사진,
쌤앤파커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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