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흥량에서도 가장 물살이 센 관장목을 보기 위해 답사에 나선 전국해양문화학자대회 회원들이 마도해변에서 바다를 보고 있다
이재언
안흥량은 신진도와 마도에서 이어지는 관수각과 가의도 사이의 해역을 말하며 안흥량 가운데서도 물살이 가장 센 곳이 관장목이다. 조운선과 중국 무역선, 사신 행렬이 지나는 안흥량은 물살이 세고 안개가 자주 끼어 원래는 '난행량(難行梁)'이라 불렀지만 사람들이 그 이름을 싫어해 '편안한 길목'이라는 뜻의 '안흥량(安興梁)'으로 개명했다.
국가재정의 근간인 삼남지방 세곡(稅穀)은 전라도 군산을 거쳐 진포-마량진 -원산도-안면도-안흥진-소근진-황금도-난지도를 거쳐 경기만으로 이르렀다. 세곡 운반선이 안흥량에서 끊임없이 난파당하자 조정에서는 운하굴착을 시도했다. 굴포는 안흥량을 거치지 않고 경기만으로 통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운하굴착의 역사를 보면, 고려 인종 12년(1134년) 7월 내시 정습명이 약 7리를 남기고 중단했고, 고려 공양왕 3년(1391년) 7월에는 왕강이 10리 정도를 굴착했지만 토사 때문에 중단했다.
조선 태조 시절 '최유경'과 '남은'이 암반층 때문에 굴착이 불가능함을 고하자 태종 12년에는 하륜(1412년)이 갑문식 운하를 만들어 조운선이 도착하면 작은 배로 옮겨 실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수차례 시도했던 굴포운하가 실패한 이유를 오석민 연구실장은 이렇게 지적했다.
▲500석 조운선의 짐을 150석 배로 옮겨 싣는 번거로움 ▲천수만 수심이 낮아 대형조운선이 운하에 접근곤란 ▲암반층으로 인해 항행 곤란 ▲운하인근 지반이 약해 토사가 운하로 흘러내림우리나라 유일한 안면운하...운하를 만들기 전 안면도는 본래 육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