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내린 '참외 하우스' 사드(THAAD)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성주 농민들이 30일 오전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에서 트랙터를 동원해 참외밭을 갈아엎고 있다.
남소연
세상은 요즘 딱 두 군데만 뜨거운 것 같다. '성주'와 '종편'이 그 두 곳이다.
지난 13일, 사드(THAAD)의 배치 지역이 최종 공개됐다. 성주군이었다. 국방부는 설명단을 파견했지만 군민들의 저항은 거셌다. 국무총리가 직접 내려가 사태의 진정을 시도했으나, 오히려 더욱 거센 반발만을 불러일으켰다. 총리는 6시간 동안 버스 안에서 발길이 묶여 움직이지 못했다.
거센 저항이 이어지는 사이, 종편은 이 저항에 '외부세력'이 침투해 있다는 투의 보도를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민주시민언론연합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7월 15일에서 21일까지 TV조선은 시사토크쇼와 뉴스 프로그램의 66.7%를 사드 관련 내용에 할애했다. 같은 기간 채널A는 79.2%를 할애했다. 거의 대부분의 방송이 사드 관련 내용으로 채워진 것이다.
이들은 주로 사드 관련 집회의 '외부세력 개입'에 방점을 찍었다. '전문 시위꾼'이 사드 관련 집회에 개입하고 있고, 이들의 주도로 폭력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성주 군민들의 상경 집회에 관해서는 "서울로 올라오시는 순간 여러분들의 순수성은 자칫 잘못하면 이용당하기 십상"이라며, 외부세력 개입에 대한 섣부른 걱정을 섞기도 했다.
오보도 상당 부분 섞여 있었다. TV조선 <박종진 라이브>는 '외부세력 개입'을 말하며 화면에 문규현 신부의 얼굴을 띄웠다. "문규현 신부 등 일행, 또 시민단체 시위 주도?"라는 자막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당일 문규현 신부는 서울 '평화통일을 여는 사람들' 사무실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채널A <김승련의 뉴스 TOP10>에서는 외부세력을 향해 "직업적 혁명투사"라며, "과거 세월호 사건이라든가 광우병 사건 때 극렬시위를 해서 경찰병력들 죽이고 했던 사람들 있"다는 발언이 나왔다. 세월호 시위와 광우병 시위 과정에서 사망한 경찰은 한 명도 없었다. 명백한 허위사실이었다.
손솔 민중연합당 공동대표가 성주에서 목격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손 대표는 당시 서울의 당사에 머물러 있었다. 오보였다. "친중, 친북적 부분에서 자신들의 공간을 만들어 내려는 것"이라는 전형적인 종북몰이도 이어졌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이제까지 우리 나라를 뒤덮었던 수많은 이슈들 가운데, 우리가 '외부세력'이 아니었던 경우는 얼마나 될까.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했던 사람 중, 당사자였던 사람은 얼마나 될까. 찬성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직접 해당 역사교과서로 공부를 해야 할 학생들이나, 국정 역사교과서에 왜곡되어 등장할 인물이 아니라면 딱히 당사자라고 하기는 힘들 것 같다.
밀양 송전탑 논란 때는 어땠는가. 송전탑이 건설되든 건설되지 않든,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별다른 고충 없이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 모두 밀양 송전탑 건설에 대해 찬성 혹은 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통합진보당 해산은 어땠을까. 당장 통합진보당 당원은 10만 정도였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든 해산되지 않든, 나머지 사람들은 사실 별다른 피해 없이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해 한 마디씩 의견을 얹었다. 당장 통합진보당 해산을 끝없이 추동한 사람들이 종편의 패널들 아니었던가.
'외부세력'이라는 논의는 대단히 소모적이다. 우리는 모두 외부세력이다. 다른 사람의 일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래서 연대하지 못하는 사람만이 존재하길 바라는 것인가.
세월호 참사는 '남의 일'이었다. 내가 아는 그 누구도 그 참사에서 사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는 끔찍한 비극이었으며, 우리 모두가 추모하고 슬퍼해야 할 일이다. 수습의 과정에서 나타난 무능에 분노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게 어떻게 내 일처럼 생각이 되냐"는 것은 나향욱 전 기획관이 "민중은 개, 돼지"라는 말과 함께 꺼낸 말이기도 했다.
연대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다른 사람의 일을 나의 일처럼 생각하는 것. 다른 사람의 일에 공감하고 분노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핵심 가치다.
우리는 모두 외부세력이다. 동시에 우리는 모두 외부세력이 아니기도 하다. 이 모든 것들은 곧 우리의 일이다.
우리가 직접 국정 역사교과서로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그 역사교과서로 공부한 아이들이 사회의 중추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분명 그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당장 송전탑 피해 지역에 살지 않더라도, 언젠가 우리가 그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 제대로 된 설득과 보상 없이 무작정 토건 사업만을 추진하려고 할 때, 누구도 저항하지 않는 선례를 만든다면 그 다음 피해는 바로 우리의 몫이다.
통합진보당 당원이 아니었더라도, 정부의 주도로 어떤 정당을 해산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위협이 되기 십상이다. 당 지도부 몇 사람의 행위로 당 전체를 해산할 수 있는 판례를 만들었을 때, 과연 우리가 지지하는 다른 정당이 무사하리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세월호에서 죽은 것은 내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모두의 비극이다. 언젠가 나 역시 바다에서 구출되지 못하고 죽어간 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국가가 국민을 구조할 권리를 방기한다면, 우리 모두가 그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사드의 성주군 배치도 마찬가지다. 사드가 아무런 합의와 대화 없이 성주에 배치되었을 때, 피해시설의 다음 입지가 우리의 집 앞일 가능성을 누가 배제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 사드의 피해자들이다. 그리고 설령 우리가 사드의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그들과 연대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단순한 원리다.
설령 '전문 시위꾼'이 등장했다고 해도 그렇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허용한다. 어떤 시민이 현장마다 찾아다니며 집회에 참여한다고 해서, 그가 어떤 범법 행위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해도 그렇다. 어떤 정치인이 어떤 방법으로 정치를 하든, 그것이 도덕적인 선을 넘지 않는 범위라면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바는 아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네팔에 가든, 안철수 전 대표가 사퇴를 하든 관여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나라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직업이 있습니다. 시위전문가라는 직업입니다."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에서 김광일 진행자가 한 말이다. '직업'이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종사하는 일을 말한다. 집회에 갔던 사람들이 어떤 대가를 받았는가. 어떤 이익을 취했는가.
'전문 시위꾼'이라면 일당 2만원의 어버이연합이지, 성주에 모인 시민들은 아니다. 그들이 시위를 통해 금전적인 이익을 취했다는 증거가 드러나기 전엔 분명 그렇다.
우리는 모두 '외부세력'이다. 외부세력이라는 이유로 시위에 참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모두 이 사회에 대해 일정 정도의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책임감과 의무감이 '집회와 결사'라는, 헌법이 보장하는 방식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문제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모두 당사자들이다. 같은 국가와 사회의 틀 안에서,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당사자들이다. 우리의 권리를 위해 광장으로 나서는 것에, 거리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연대와 공감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시위 현장에 나가는 시민들을 단순히 '외부 세력'과 '전문 시위꾼'이라는 말로 매도할 수는 없다. '외부 세력'과 '전문 시위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 전체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그들이 누리고 있는 표현과 집회의 자유가, 민주주의 사회의 유지를 위한 핵심 가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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