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아를에서 만난 독일인과의 재회, 홈스테이 1일

[맞벌이 가족 리씨네 유럽캠핑 에세이 43] 독일 밤베르크

등록 2016.08.02 09:57수정 2016.08.0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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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전 나는 '독일'하면 '전범국가', '학비무료' 두 가지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전범국가'는 좁게는 나의 가문, 넓게는 나의 민족이 처한 역사적 억울함이 해결되지 않았기에 잊지 않으려는 부단한 '의식의 되새김질'의 결과물이었고, 학비무료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자녀의 진로, 진학에 대한 고민과 맥이 닿아 있을 것이었다. 

캠핑을 하며 유럽캠퍼들과 잠깐 이웃이 되어 그들을 살펴보노라니 독일에 대해 많이 궁금해졌다. 네덜란드를 선두로 독일에 대해 주로 험담을 했고 그것은 독일의 경제, 독일인의 영어구사능력, 성격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난 독일 사람들은 별 말을 않고 고요하다는 느낌. 갖은 자의 여유일 수도 있지만 전범국가라는 역사적 과오에 대한 자각의 노력과 EU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경제대국으로서 더 겸손해야 한다는 의식적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 나오는 것 같았다.


많은 것이 궁금하던 차에 우린 프랑스 아를에서 만난 에버하드와 구드운으로부터 '밤베르크에 올 거면 반드시 우리 집에 머물러라' 하는 기분 좋은 제의를 받았다. 99번의 저주를  받은 내비게이션이 뭔 일이 있는지 에버하드의 집을 한 번에 찾아 안내하기 시작했다. 3시에 도착하겠다는 우리의 말에 점심은 꼭 와서 먹으라고 답장을 보낸 그들의 헤아림이 고마워 1시간을 당겨 가기로 했다. 밤베르크에서 20분 떨어진 작은 시골마을. 아~ 어떤 곳일까?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는 1차선이고 곳곳에 마주 오는 차를 비켜설 공간이 넉넉히 마련되어 있다. 보내준 사진을 보며 집을 찾던 우리는 이웃집에 들어갔고 바로 그때 옆에 있던 불그스름한 집을 보고는 짐작 반 확신 반으로 차를 돌리는데 이미 구드운이 길가에 서 있다. 축산농가 사이에 위치한 집이지만 가축분뇨냄새가 별로 없는 별천지다. 불과 몇 년 전까진 임대한 집에서 살았다는 에버하드는 노년을 보낼 양으로 이 집을 샀단다. 3000평으로 아주 큰 땅이다. 집 앞 풀은 자신이 깎지만 그 외 넓은 곳은 이웃집 농부가 와서 깎아다가 젖소 먹이로 쓴다고 했다.

올해 나이 62세인 에버하드와 61세인 구드운은 모두 동독일 출신이다. 에버하드는 치과의사이고 구드운은 동독일에선 전문직이었으나 이곳에 와선 체제도 다르고 육아문제도 있고 해서 직업을  갖지 않은 채 있다가 지금은 에버하드의 진료소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사실 에버하드는 통일되기 전 서독에 '이주신청서'를 냈었다. 한 번 냈다가 떨어지고 재차 낸 후 허가가 나서 서독에 왔고 2년 후에 통일이 되었다고 했다.

베를린 벽, 처음에 한 사람이 벽 사이에 발을 집어넣은 것을 시작으로 모든 사람이 벽을 들썩거리며 무너뜨렸던 그날의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에버하드는 그날을 추억했다. 통일 되던 날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오는 길목은 주차장처럼 차가 막혔다고 했다. 사람들이 내려 길가에서 밥을 지어 먹기도 했단다. 그때 서독 사람들이 나와 두 손을 들고 환영하며 자유의 기쁨을 누렸다 했다.

그러나 그 후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며 생계를 해결하는 것도 어려웠겠지만 문제는 '동독 사람은 가난하고 똑똑하지도 않다'라는 서독 사람들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더 어려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에버하드의 세 딸은 모두 흉부 전문의, 외과 전문의, 치과 의사의 직업을 가졌지만 세 딸 모두 '동독 아이들은 똑똑하지 않다'라는 편견에 맞서 치열하게 공부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졌다.


구드운이 점심 식사로 준비한 것은 돼지고기 찜 정도 된다. 보쌈용 덩어리 고기를 넣고 갈비 양념보다 더 짭조름하게 해서 푹 끓인 것인데 우리 입에 매우 친숙한 맛이다. 아이들도 잘 먹었다. 그들도 가끔 먹는다는 밥을 곁들여 먹었는데 4일 동안 그들의 일상적인 아침식사를 대하고 보니 그날의 밥과 돼지고기 찜은 동양인인 우리를 위해 무척이나 신경 써서 준비한 특별식이었다.

 우리 입맛을 배려한 동양식 돼지고기찜. 간간한 양념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우리 입맛을 배려한 동양식 돼지고기찜. 간간한 양념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이성애

집의 기본 뼈대가 되는 부분은 200년이 넘었고 근래에 들어 부엌, 방 등을 증축했다고 했다. 공간은 아주 넉넉하게 꾸며졌고 4개의 방도 넓고 쾌적했으나 듣던 대로 정말 사치를 모르는 소박함이 배어있다. 아래층 거실엔 에버하드의 삶이 담긴 LP판과 서적들이 많았고 부엌은 정원으로 나가는 옆에 있으며 식사하는 공간과 조리하는 공간이 큼직하게 나뉘어져 있었다. 건물은 큰 황토벽돌과 나무가 주재료이고 가구도 거의 원목가구였다. 식기는 거의 사기종류였는데 요즘 한국 몇몇 주부들이 소장하고자 애쓰는 '화려한 유럽 식기'는 없었다.


첫 날 식사에서 아이들에게 고기와 밥 야채를 할당해서 주며 영양가를 맞춰 골고루 먹도록 한 것이 인상적이었는지 나의 자녀 양육법에 대해 웃는 미소와 따뜻한 눈빛으로 긍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에버하드는 표면적으로는 태양광 에너지만을 쓰는 것처럼 말하지만 이웃국가의 핵발전소에서 만든 에너지를 수입한다는 말을 하며 독일 정부를 비판했다. 옆 집에 사는 농부는 월급을 받는다며 독일의 농업 시스템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구드운과 티격태격하는 모습, 대부분 구드운에게 져주는 모습이 귀여웠고 서독으로 이주하며 전문직을 잃게 된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곱디 곱게 키웠을 큰 딸이 아일랜드계 독일인 사위와 이혼하는 상황에 대해 엄마인 구드운은 사위를 원망하는 말을 했고 에버하드는 말을 멈췄다. 비판적이고 냉철한 지식인 부모도 자식에 대해선 쿨할 수 없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인가 보다. 딸만 둘인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나 또한 구드운의 모범따라 내 자식은 일단 감싸고 사위 욕을 실컷 해야겠다.

"교양? 고상? 합리적 판단? 나부랭이가 뭣이 중헌디~"

 피아노를 연주하냐는 에버하드의 말에 '못한다'고 말했다. 참 아쉬웠다.
피아노를 연주하냐는 에버하드의 말에 '못한다'고 말했다. 참 아쉬웠다.이성애

 양파란 이름을 가진 고양이다. 야생 본능이 있어 쥐를 잡아 문 앞에 두곤 했다.
양파란 이름을 가진 고양이다. 야생 본능이 있어 쥐를 잡아 문 앞에 두곤 했다. 이성애

 거실엔 음악을 좋아하는 에버하드의 LP판이 가득했다.
거실엔 음악을 좋아하는 에버하드의 LP판이 가득했다. 이성애

 주방엔 소형 냉장고가 있고 햄, 와인을 비롯한 대부분 식재료는 지하 창고에 보관한다.
주방엔 소형 냉장고가 있고 햄, 와인을 비롯한 대부분 식재료는 지하 창고에 보관한다. 이성애

#리씨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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