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지원 재단인 화해 ·치유재단이 공식 출범하는 2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바비엥 스위트에서 김태현 이사장,(오른쪽 여섯 번째) 윤병세(왼쪽 네 번째) 외교부 장관,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오른쪽 다섯 번째)을 비롯한 위원들이 현판 제막식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기구가 지난 달 28일 '화해, 치유 재단'이란 완장을 차고 업무를 시작했다. 피해 할머니들의 반발과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 그들은 기어코 합의를 시행하겠단다. 어떻게?
5월 아셈 회의에서 아베 총리가 우리 대통령에게 '합의 실천'을 재확인했으며 이에 따라 10억 엔이 '조기' 전달될 것이라는 일본 측 보도, 8월 둘째 주에 관련된 한일 실무 회담을 하자는 우리 정부의 제안 등을 볼 때 8.15 전후로 일본에서 조건이 딸린 10억 엔이 오고 "일본의 합의사항 성실이행으로 합의는 깔끔히 마무리됨"이란 담화문 발표로?
사드가 원님이면 '위안부'합의는 길잡이?언필칭 '화해, 치유 재단'에 10억 엔이 입금되는 그 시각부터 '위안부' 문제는 우리와 일본, 피해 할머니들과 일본 정부 간 문제가 아니라 '돈을 주고 싶은 재단'과 '그것을 거부하는 할머니'들의 문제로 뒤바뀐다. 한일 사이 장애물은 말끔히 사라지는 것이다.
사드가 행차하는 원님이면 '위안부'합의는 "물렀거라" 길잡이. 사드 한국 설치는 중국과 러시아까지 훤히 살피는 그 레이더에 미국과 일본의 미사일 방어망을 연결하는 것인데 한일 간 정상회담조차 못하는 지경이면 안 되는 거였구나, 그래서 미국이 그렇게 그랬구나, 이제야 앞뒤를 맞춰 본다.
맞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피해자가 수용하고 국민이 납득하는 해결 방안"을 요구하는 박 대통령의 대일본 공개 신경전은 취임 초 시작된다. 그렇다면 2013년부터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 이전까지는 한일 간 군사협력 공백 상태였나?
아니다. 2013년에는 5월과 10월 한미일 형식으로(한겨레. 2014.5.27), 2014년에도 7월 한미일 방식으로(뉴시스. 2014.7.16), 2015년 12월에는 사상 최초 한일 양국 간 형태로(미디어 오늘. 2016.1.20) 매년 일본과 군사훈련을 했다.
게다가 2014년 12월 '한미일 정보보호약정'을 기습 처리,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만회하지 않았나. 이처럼 '위안부'를 둘러싼 신경전에도 불구, 한일 군사협력이 위축은커녕 확대, 강화되는 추세여서, 그 기류를 타면 사드 배치 전후 불거질 문제는 해결하고도 남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왜 2015년 12월 굳이 '위안부'합의를 밀어붙였을까?
2015년 상반기 미국의 말 폭탄2013년 3.1절 기념식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입장은 천 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일본을 향해 일갈했을 때 박 대통령은 '이 문제만큼은 이긴다'는 계산이 끝났을 거였다.
2007년 미 연방 하원이 "일본 정부가 여성을 성노예로 강제 동원한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고, 2012년에는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모든 문서와 성명에 일본군 위안부 대신 성노예라는 표현을 쓰라"고 지시하는 등 미국이 든든히 뒤를 받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 1월 미 하원에서 "2007년 결의안 준수 촉구' 법안까지 나오자 기세가 더욱 올랐을 거다. 그래서일 게다. 2014년 3월 헤이그 한미일 정상회담 합의 결과 매달 열리게 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국장급 협의는 요지부동, 진척이 없었다.
변화는 2015년 2월 극적으로 찾아왔다.
"민족감정은 여전히 악용될 수 있고,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의 2월 27일 세미나 발언이다. "과거의 적을 비난하는 것 = 도발"이라는 말, 누굴 겨냥한 것일까? 같이 돌아가는 일본은 아닐 것이고, 해봐야 소용없는 중국도 아닐 것이다. 워싱턴의 2월 27일은 우리의 2월 28일, 3.1절 전날이다. 2년 전 3.1절 기념사의 가해자와 피해자 운운 비슷한 말을 또 하면 그건 미국에 대한 도발이란다.
2탄은 작년 4월 6일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터뜨렸다. 그는 이날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월 27일 아베 일본 총리의 "위안부는 인신매매 희생자" 발언에 대해 "긍정적인 메시지다"라고 평가했다. "위안부 = 인신매매 희생자"는 "위안부 = 인신매매를 한 민간 성매매 업자에 의한 피해자"가 되며, 일본 정부나 군의 책임은 사라진다. 인류가 용납할 수 없는 말, 피 끓는 거짓말을 참말이란다.
3탄은 5월 18일 케리 미 국무장관이 날렸다. 서울을 방문한 그는 "아베 일본 총리가 고노 담화를 계승하고 있다고 미국은 인식하고 있다. 한일 관계 개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노 담화는 1993년 당시 고노 일본 관방장관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과 일본군의 개입"을 인정한 일본의 공식 입장으로서 위안부 문제 해결로 가는 징검다리 격이었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2014년 6월 '고노담화 검증 결과'란 것을 발표 "강제동원의 증거는 없고, 고노담화는 한일 간 정치 협상의 산물이었다"고 뒤집는다. 그런데도 케리 국무장관은 아베 총리가 고노담화를 계승하고 있단다. 미일 합작, 징검다리를 치우고 우리 등을 떠민다.
미 국무부 한국 책임자, 서열 3위의 정무차관, 끝내는 국무장관까지 들고 일어나 청와대에 날리는 말 폭탄은 단 하나 "일본이 주장하는 선에서 빨리 끝내라!"였던 것이다. 심판이 한쪽을 일방적으로 편들 경우 경기는 다른 한 쪽의 패배를 위한 요식행위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작년 10월 미국 방문에서 "11월 초에 한일 정상회담을 하겠다." 운동장 입장을 약속하고, 한일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10월 30일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올 해 안에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경기 종료시점까지 못 박는다. 게임이 끝난 지 7개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
'위안부' 합의 후 무슨 일이 벌어지나? 먼저 일본이다. 첫째, 책임을 더욱 철저히 부정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올 1월 18일 참의원에서 "이제까지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서 군과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아베 총리 본인의 1차 집권기인) 2007년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했다"며 "그 입장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다(연합뉴스. 2016.1.18.)"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의 서열 3위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심의관은 2월 16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선 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을 확인할 수 없었다(한겨레. 2016.2.17.)"고 했다.
둘째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최근 일본 초등학생 대상 시험문제에(...) 동아시아 지역 지도를 제시한 뒤 '일본 영토인 다케시마를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는 국가를 아래 보기에서 고르라'며 러시아, 중국, 한국, 북한의 국명과 국기를 제시하고 있다."(한겨레. 2016.6.20.)셋째 역사 왜곡의 정도가 매우 극악해지고 있다.
"내년부터 일본의 고교 1~2학년이 배우게 될(...) 도쿄서적과 다이이치(제일)학습 등 대부분 <일본사A·B>와 <세계사> 교과서들은 '고종 황제의 헤이그 밀사 사건과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살해 사건, 의병운동에 대응하여 일본의 한국 병합이 이루어졌다'는 식으로 서술한 것으로 나타났다."(같은 신문. 2016.3.18.)다음은 우리다. 일본의 가없는 도발에 정부는 한없이 침묵하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일본이 '위안부' 강제연행을 전면 부정하는 증언을 유엔에 제출한 지 보름도 지나지 않은 3월 2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마이크를 잡았음에도 3600자 연설문 중 단 한 번도 '위안부'를 말하지 않았다.
또한 정부는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내년도 예산을 전액 삭감, 사업을 중단했다. 교과서 왜곡도 마찬가지. 관련 성명(3.18)에서 '강력한 규탄'이나 '근본적 시정'을 전부 빼고 그저, 스스로 한숨을 쉰다는 '개탄'에 그쳤다.
그래서다. '12.28 위안부 합의'를 한 번 더 보자. 국제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 따라서 '사죄와 반성'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점. 배상금도 아닌 몇 푼(10억 엔)의 금전으로 상처를 감추려 한다는 점, 그렇게 모든 문제를 영구히 덮으려 한다는 점 등에서 이 합의는 1965년의 매국적 한일협정과 같다.
그러나 다른 것이 있다.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함"이다. 한국 외교에는 그렇게 재갈이 채워졌다. 미국은 왜 이렇게까지 무리를 하는 걸까?
작년은, 미국이 아시아 회귀를 공개 선언한 지 4년째이자, 오바마 정부 임기 종료 직전 연도로 마무리 수순을 미룰 수 없었다. 4월 '미일 안보가이드라인'의 공격적 변경이 새 차 뽑기라면 거기에 한국을 밀착시키는 옵션이 따라야 했다. 그래서 무리를 좀 했다? 맞다. 그러나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다.
"우리 한미동맹의 임무는 지금도 앞으로도 반드시 양국의 이익에 공히 봉사하는 것으로 보여야 한다. - 2008년 주한미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전문. (그들은 아는 우리는 모르는. 88쪽)" 아동 성노예 범죄, 나치를 능가하는 그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것도 모자라 피해자인 우리의 입을 아예 밀봉해 버리는 이 정도의 '외교행위'는 한미 관계에서 미국에 엄청난 손실을 초래한다. 그 모든 손해를 상쇄하고도 남는 '거대 이권'이 있어야만 가능한 선택이다. 그건 뭘까?
'위안부'합의, 그 위험한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