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시 대회'에 풍자시 내 피소된 대학생 무혐의

경찰, '각하 의견' 검찰 송치 "주최 측이 심사단계서 걸렀어야"

등록 2016.08.07 14:09수정 2016.08.0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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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설승은 기자 = '이승만 시(詩) 공모전'을 연 보수단체가 이 전 대통령을 교묘하게 비판·풍자하는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해놓고 뒤늦게 입상을 취소하고 출품자를 고소했지만, 경찰은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자유경제원이 공모전 출품작 '우남찬가'를 쓴 대학생 장아무개(24)씨를 업무방해·사기·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각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7일 밝혔다.

경찰은 죄가 성립하지 않고 범죄 혐의가 없는 것이 명확하다고 판단할 경우 피고소인 소환조사를 하지 않고 진술서만 서면으로 받고서 이처럼 각하 의견을 달아 사건을 검찰에 넘긴다.

올해 3월 자유경제원은 '제1회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 시 공모전'을 열어 장씨가 낸 우남찬가를 입선작 중 하나로 선정했다. 심사위원장은 소설가 복거일씨였다.

우남찬가는 이 전 대통령을 훌륭한 국부와 지도자로 칭송하는 문구가 담겼지만, 각 행 첫 글자만 세로로 읽으면, '한반도 분열 친일인사 고용 민족반역자 한강다리 폭파 국민버린 도망자 망명정부 건국 보도연맹 학살'이 된다.

 우남찬가
우남찬가오마이뉴스

장씨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신의 작품과 상장 사진을 올리며 공모전 수상 소식을 알렸다. 또 상금 10만 원을 받아 여자친구와 고기를 먹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뒤늦게 이 작품의 속뜻을 알아차린 주최 측은 장씨의 입상을 취소하고 장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공모전 개최 비용 등 손해배상금 5천699만 원을 청구하는 민사소송도 냈다.


하지만 경찰은 심사단계에서 주최 측이 작품을 충분히 탈락시킬 수 있었고 장씨의 행위에 위계나 위력이 없었다고 판단해 업무방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경찰은 또 장씨가 조롱할 목적을 숨기고 입상함으로써 상금 10만 원을 받아 간 행위에 사기 혐의가 있다는 자유경제원의 주장에는 공모전에 다양한 입장의 작품을 출품할 자유가 얼마든지 있고, 주최 측이 이를 걸러내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주최 측은 장씨가 인터넷에 게시한 글도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장씨의 글이 입상해서 고기를 먹었다는 내용이 담겼을 뿐 누군가의 명예를 해쳤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주최 측이 공모전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작품을 심사단계에서 충분히 걸러낼 만한 기회가 있었다는 점과 더불어 실제로 이처럼 각 행의 첫 글자를 이어 의미를 연결하는 기법(acrostic)이 많이 쓰인다는 점도 고려했다.

주최 측이 장씨에 대해 제기한 민사소송은 법원 조정 결렬로 계속 진행될 예정이지만, 형사 사건이 각하 의견으로 검찰로 넘어가 향후 최종 판정이 주목된다.

자유경제원은 같은 공모전에서 'To the Promised Land'(약속의 땅으로)라는 영문 시로 최우수상을 받은 이모씨에 대해서도 민·형사 조치를 했지만 최근 법원 중재로 이를 모두 취소한 바 있다.

이씨의 작품도 표면상으로는 이 전 대통령을 추앙하는 내용이지만 역시 세로로 읽으면 'NIGAGARA HAWAII'(니가가라 하와이)라는 문장이 된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우남찬가 #이승만 #자유경제원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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