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비아 여행
김동범
에토샤 국립공원(Etosha National Park)을 빠져 나온 우리는 서쪽으로 향했다. 다음 목적지 오푸오(Opuwo)로 약 400km 떨어진 곳이다. 갈 길이 멀다.
에토샤에서 여행하는 동안 계속 비포장도로만 달려 오랜만에 나타난 잘 닦여진 도로가 반가웠다. 3일간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리며 흙먼지를 마셨으니 정말 반갑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오푸오로 가기 전 나름 큰 도시라고 여겨진 온당와(Ondangwa)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정으로 인해 사건이 벌어졌다. 물론 꼭 그것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우리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대형 마트 앞에 주차를 했다. 나미비아를 비롯해 남아프리카 지역에는 픽앤페이(Pick&Pay)나 숍라이트(Shoprite)와 같은 대형 마트를 쉽게 볼 수 있었고, 근방에 패스트푸드점도 자리 잡고 있어 간단히 허기를 채우기 좋았다. 그래서 그날도 아무 생각 없이, 아니 어쩌면 당연히 마트 앞으로 찾아간 것이다.
난 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켰다. 그때 내 뒤에서 다가온 3명이 우리 차 바퀴에 문제가 있으니 보라는 말을 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살짝 돌려 바퀴를 봤고, 혹시나 싶어 만져도 봤다.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나는 뭔가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는데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나를 향해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냥 이상한 녀석들인가 보다, 싶었지만 나는 그 찝찝한 기분의 이유가 무엇인지 너무도 빨리 눈치챘다.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사라졌다. 가방을 열어보고, 조수석을 다시 살펴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휴대폰을 소매치기 당한 걸 깨달았다. 정말 황당할 정도로 수법이 자연스러웠고, 순식간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대단했다.
당연히 휴대폰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잠시 후 사람들에게 실망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주변 사람에게 하소연했는데,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던 몇 명의 아주머니는 내가 소매치기를 당하는 것을 다 봤다고 털어 놨다. 물론 제 3자가 통역을 해줬지만 눈만 깜박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을 보고 소매치기를 당한 것보다 더 어이가 없었다. 영어를 해도 알아들을 턱이 없었지만 난 그 자리에서 그걸 보고도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냐며 화를 냈다.
여기는 그런 곳이다. 소매치기를 한 놈보다, 소매치기를 당한 놈이 더 이상한. 남이 잘못 된다 해도 그건 내 일이 아니라 참견할 필요가 없는 그런 곳. 내가 화가 났던 건 소매치기를 당해서가 아니라 바로 앞에서 모든 걸 본 몇 명의 사람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년 8개월간 여행을 하면서 여러 사건을 겪곤 했지만 소매치기를 당한 건 처음이었다. 나미비아에서 여행자를 상대로 소매치기가 번번히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내가 당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5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더러운 기분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휴대폰 유심을 정지 시킨다 한들,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쓴다 한들 휴대폰은 돌아오지 않았다. 덕분에 예상치도 못한 도시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소매치기 당한 놈이 더 이상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