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이화인들의 행진대학 본관을 점거중인 이화여대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지난 10일 오후 이화여대 정문 앞 광장에 모여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대규모 행진을 벌이고 있다.
남소연
본관 안에서 진행되는 전체 토론인 '만민공동회'에서는 모든 사람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직접 민주주의적인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본관 중앙에 모여서 거수를 한다는 것, 익명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다는 점 외에는 민주주의적인 요소가 없다.
오히려 이대에서의 '느린 민주주의'와 '만민공동회'가 의미하는 바는 '본관의 주도자는 익명의 이화인이기 때문에 어떠한 대표성도 인정할 수 없으며, 어떠한 사항에도 개인을 드러내거나, 개인이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점이다.
이 기조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발언은 배제되거나, 야유를 받게 된다. 심지어는 학생들의 직접 투표에 의해 선출된 학생회 대표들도 익명의 이화인 개인이 아닌 '대표성'을 띤다는 이유로 발언권이 배제되거나 야유를 받았다.
본관의 인원을 충원하기 위한 학생회 사업 또한 대표성을 드러낸다는 이유로 아래로부터의 반대에 의하여 취소되기도 하였다. 이화인의 전체의 의견을 듣기 위한 직접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그 절차와 내용적 측면에서 오류가 많다. 오히려 본관 안의 익명성을 지키기 위한 직접민주주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배제된 소수의 '운동권'이러한 왜곡된 직접민주주의에서 크게 배제된 존재는 '운동권'이다. 본관 농성에서 운동권이 배제된 이유는 투쟁 속에서 '운동권'의 특색을 드러냈기 때문이 아니다. '운동권은 자신의 단체를 드러내면서 본관 안 하나의 이화인이라는 익명성을 거부하고 주도자가 되려고 할테니 이 투쟁에는 빠져라'라는 여론은, 단체를 밝힌 적도 없는 정치단체 소속 활동가를 본관에서 추방했다.
또한 추방되기 전 본관 안에서의 운동권은 대중에게 '물렁하다'며 '훈계질'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장에서의 대중의 급진적인 발언에 근거를 대며 힘을 실어주었다. 모든 의사결정은 몇몇 운동권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 않았으며, '만민공동회' 안에서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을 따랐다. 그럼에도 이화여대 안의 대중들은 이화여대 투쟁에 대한 한 정치단체의 입장을 운동권이 낸 입장이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타령'이라며 비하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위 기사는 이대 투쟁에서의 운동권 배제를 승리를 위한 현실적 전술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이대의 투쟁 방식을 "액체연대"라 칭하며 수평적인 관계와 활발하고 민주적인 토론이라고 찬양하고 있다. 이는 대표성 부정과 운동권 배제를 민주적이고 수평적 관계에서 나온 전술이라고 보는 자가당착적인 주장이다.
'현실적 전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운동권 배제현상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존중받아 마땅한 평등과 자유가 침해된 현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침해가 직접민주주의적인 형식을 통하여 나타났다는 것을 부각하면서, 그렇기에 민주적이라는 주장은 그리스의 도편추방제가 바람직한 민주주의라고 보는 시각과 다르지 않다.
섣부른 찬사보다는 심도있는 분석과 다각적 토론으로이처럼 위 기사에서 찬양하고 있는 '느린 민주주의'는 다수의 익명성을 지키기 위하여 특정 소수를 낙인찍고 배제함으로써 유지되고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직접결정'과 '다수결'이라는 직접 민주주의의 형식을 물신화 한 채 그 내용에 대해서 눈감는 것은 잘못이다. 따라서 이러한 '느린 민주주의'가 전사회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과연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거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화여대의 본관 농성이 '총장퇴진' 요구를 건 지 20일을 넘어가고 있다. 이화인들의 투쟁은 단결된 학생들의 힘이 대학의 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이 투쟁의 승리와 전진이 개인의 자발성과 단결력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투쟁 과정에서의 한계와 문제점들을 이 투쟁이 '승리'하였기 때문에 앞으로의 투쟁에 적용하자는 주장은 경계해야한다. 혐오와 배제가 만연한 우리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집단적 에너지가 넘치는 현장에 적용되었을 때 발생하는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하며, 이러한 흐름에 섣불리 찬사를 보내기보다는 이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다각적인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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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민주주의에 기댄 이화여대의 '느린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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