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식씨는 서울 종로 서촌에서 30평 궁중족발을 6년째 운영하고 있다
안진걸 제공
저는 요즘 '핫하다'는 지역 중의 하나인 서촌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는 사업자입니다. 20년이상 이곳에서 살면서 아이들을 키웠고, 조그만 분식점에서 시작해 10평도 안되는 포장마차 7년을 거쳐 지금 30평 '궁중족발'을 6년째 운영 중입니다.
서울시내 한복판에 있는 경복궁 근처지만 몇 년 전까지는 조용하고 살기 좋은, 흡사 시골마을 같은 곳이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마주치면 서로가 다 아는 사이였습니다. 다들 친척처럼 집안 대소사도 함께하고, 관계가 돈독해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동네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외지인들이 몰려들더니 슈퍼, 세탁소, 철물점 등 동네 편의시설이 생소한 가게로 바뀌었습니다. 인근 삼청동처럼 일부러 구경오는 사람도 생겨났습니다.
물론 유동 인구가 늘어 상권이 많이 활성화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발생하더군요. '떳다방'처럼 부동산이 늘더니 땅값이 치솟고, 건물주들이 바뀌더니 임대료가 상상도 못할 금액으로 올라가면서 기존 세입자가 내쫓기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월세 300만원이 월세 1200만원으로...저희 가게도 딱 이런 경우입니다. 올해 1월 건물주가 바뀌더니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300만원을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1200만 원으로 올릴 테니 못 내면 나가라고 하더군요. 보증금은 3배, 월세는 4배가 뛰었습니다. 계약서도 안 써주고, 통장번호도 안 알려주고 3개월을 채우더니 임대료를 내지 않았다면서 명도소송을 걸어왔습니다.
다행히도 지인의 도움으로 공탁을 걸면서 난생처음 법원도 다녀봤습니다. 조종 기일이 돼서야 건물주가 공탁 사실을 알았는지 그 자리에서 변호인에게 화를 내더군요. 그러더니 바로 그 자리에서 명도소송을 취하하고 다른 건으로 하겠다고 하더군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해야 하는데 없는 사람은 한없이 더 힘들어지고 가진 사람은 모든 방법과 수단을 통해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1200만 원이면 4개월치 월세입니다.장사를 하면 무조건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해서일까요? 휴일도 없이 일해도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먹고사는 게 다인데 말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건물을 사들이지만, 장사하는 사람은 가게에 투자합니다. 내 삶의 기본 장소이고, 삶의 터전이기에 노후된 곳을 고치고 리모델링하면서 시설에 재투자하게 됩니다.
손님의 편의를 위해 조치한 것들이 쌓이고 쌓인 게 바로 권리금입니다. 그 속에는 자영업자의 시간과 노력 돈이 녹아 있습니다. 목숨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 재산을 건물주들이 가로채려고 합니다. 기존 세입자를 쫓아내고 새 세입자에게 권리금 없이 보증금과 월세를 높게 받으려는 속셈이지요.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말건물 평가액이 상승한 이유 중에는 기존 세입자들이 성실하게, 열심히 그 자리에서 밭을 일궈왔기 때문도 있을 겁니다. 볼거리, 먹거리, 구경거리가 없는 곳에 사람들이 찾아올 일은 없겠죠. 지금은 상권이 나아졌지만 좋지 않을 때부터 꾸준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살아왔던 사람들의 노고도 인정받아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기존 세입자를 쫓아내면 분명 여유있는 누군가 뒤따라 들어오겠죠. 하지만 비싼 임대료를 맞추기 위해 서비스 품질이 떨어지고 가격이 오르면 사람들은 더 이상 찾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 결국 가게도 공실이 되겠죠. 더 이상 들어오는 사람이 없는 공실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건물주도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이 있더군요.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고. 이 말을 실감했습니다. 자기 의견을 따르지 않는다고 대놓고 욕하고 윽박지르고 건물주와 세입자가 마치 주종 관계인 것처럼 말을 막 하더군요. 조물주는 인간을 만들었지만 건물주는 건물을 샀을 뿐입니다. 세입자까지 산 것도 아닌데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더군요.
"우리가 뭘 잘못했나요?"라는 아들의 질문, 답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