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기 변호사
박도
1999년 나는 한 고마운 애독자를 만났다. 그분은 이영기 변호사로 그 무렵 내가 펴낸 <아버지는 너희들 편이다>라는 자녀교육에 관한 책을 보시고 300권을 사주셨을 뿐 아니라, 중국대륙 항일전적지 답사 비용까지 전담해 주셨다(관련 기사 :
인생 역전, 순경에서 검사장이 되다).
그런 연유로 서초동 변호사사무실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그분은 변호사로 사기사건은 거의 수임을 맡지 않는다고 했다. 그 까닭을 여쭙자 사기를 한 사람도 고약하지만, 사기를 당한 사람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는 말씀이었다.
이 변호사는 사기사건을 수임하면 그 사건에 연루된 피고소인을 잡기도 어렵거니와, 설사 잡을지라도 그에게 변상금을 받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고 했다. 대체로 사기꾼들은 말재주가 대단히 현란하고, 특히 잔머리 굴리는 데 여간 비상치 않다. 자칫 하면 예사사람들은 사기꾼에게 당하기 십상이다.
내가 서울 구기동 산동네에서 살 때였다. 그 동네는 거의 단독주택으로 여느 시골과 비슷했는데 동네 어귀에 한 여인이 살았다.
그는 토지세나 주택세를 낼 무렵에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친정동생이 은행원인데 실적 때문에 그런다"고 하면서 대신 세금을 내는 수고를 해주겠다고 돈과 고지서를 거둬갔다. 그런 뒤 은행에 있는 동생이 준다고 하면서 비누나 휴지같은 사례품을 돌렸다.
다음에는 가을 추수 때 자기 친정은 일산으로 논 농사를 많이 짓는다고 하면서, 동네 주민들에게 1등품 경기미 햅쌀을 시중보다 한 가마니에 1만 원 정도 싸게 팔았다. 그는 그렇게 동네사람들에게 자기 친정이 상당히 부유한 줄 믿게 했다.
그런 뒤 동네사람들과 돈거래를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는 적은 돈을 빌린 뒤 매달 정확히 이자를 갚으면서 거기다 생필품 같은 것으로 사례까지 했다. 그렇게 여러 달 신용거래를 하여 자기를 믿게 한 다음 수십억 원을 왕창 빌린 뒤 잠적해 동네에 큰 피해를 남긴 적이 있었다. 사실 이런 사기꾼에게 당하게 되면 가정불화에 심지어 가정 파탄이 나는 경우가 많기 마련이다.
사기 전과자전곡 하사관학교에서 2주 교육을 마치고 돌아오자 소대 내무반에서 한 낯선 녀석이 난로당번을 하면서 거수경례를 했다. 그런데 그 폼이 나치군과 비슷했고, 복장도 단정치 못한데다가 나이도 상당히 들어보였다.
"공격! 이번에 전입해 온 김두례(가명) 이병입니다."내가 BOQ로 돌아가 짐을 푸는데 안 하사가 따라와 김 이병에 대한 설명을 했다. 그는 1주일 전에 소대로 전입했는데 사기 전과자로 육가(육군교도소의 별칭)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소대원이라고 했다. 내가 교육 중에 우리 소대로 그를 배치한 모양으로 기분이 몹시 상했다. 지난번 이두식 이병을 내가 맡았으면 이번에는 다른 소대로 배정해야 할 게 아닌가.
상급부대에서는 육가 출신들은 취사병이나 전령 또는 내무반 페치카나 난로 당번으로 근무케 권장했다. 그래서 내가 없는 사이 내무반장은 그를 내무반 난로당번을 시킨 모양이었다.
그날 저녁이었다. 당직근무로 일석점호를 마치고 내 방으로 돌아오자 그가 항고에 라면을 끓여 김치와 함께 줬다. 한밤 중 출출할 때에 먹는 라면 맛이란. 다음 당직날 저녁에는 항고에 밤을 가득 삶아 들여보냈다. 그래서 그 참에 그를 BOQ로 불러 신상을 면담했다. 그의 주소는 서울 용산구 청파동이라고 했다. 가족관계에 이어 출신학교를 물었다.
"OO법대를 나왔습니다." "뭐? 몇 학번이야?""62학번입니다."나는 순간 깜짝 놀라면서 단과대는 달랐지만 3년 선배에게 그동안 무례하게 대한 게 미안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거짓말 같았다. 그래서 몇 가지를 더 묻자 금세 거짓말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대학총장 이름도 모른다고 했다. 당시 졸업생이라면 그 유명한 유진오 총장을 모를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