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시신에 다시 경찰 손 닿게 하고 싶지 않다'28일 오후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강제부검 영장을 법원이 발부한 가운데 고인의 유가족과 투쟁본부측은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딸인 백도라지씨는 "경찰의 손에 돌아가신 고인의 시신에 다시 경찰의 손이 닿게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고인의 부인과 딸 백민주화, 백도라지씨가 묵념을 하고 있다.
권우성
우려가 현실이 됐다. 법원이 결국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 영장을 발부했다. 지난 26일 부검 영장을 기각했던 법원이 이틀 만인 28일 밤 검·경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당초 법원은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에 대해 "과학적이고 정밀한 인과관계를 밝혀야 한다"며 25일 밤 검·경이 신청했던 부검 영장에 대해서는 기각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동안 유족들은 검·경의 부검 요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단호하게 밝혀 온 터였다. 그러나 법원의 부검 영장 발부로 영장 집행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경찰과 이를 반대하는 유족 및 시민들 사이의 마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 고 백남기 농민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서울대병원에는 수백명의 시민들이 철야 농성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검·경이 부검을 주장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고 백남기 농민의 명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함이며, 다른 하나는 당시 시위 진압책임자였던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서울경찰청장 등이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미수 혐의로 고소돼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수사상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조금 더 깊게 들어가보면 검·경이 부검에 집착하는 이유가 다른 곳에 있다는 정황이 드러난다.
모두가 아는대로 부검은 사인을 명확하게 밝혀내기 위한 절차적 과정이다. 즉 사망의 원인이 불분명할 경우 이를 의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시행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 백남기 농민의 경우는 그와는 사뭇 다르다. 고인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부터 사망에 이를 때까지의 모든 진료기록이 서울대병원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려 317일간 매일 같이 고인의 상태를 기록한 진료기록은 사인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가장 확실한 자료다. 검·경이 부검을 요구하며 주장했던 사망 메커니즘이 진료기록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고 백남기 농민이 서울대병원에 들어올 당시의 상태와 사망할 때까지의 진료기록이 자세하게 남아있는데도 불구하고 검·경은 왜 그토록 부검에 집착하는 것일까. 유족들과 시민사회의 의문은 바로 이 부분에 집중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이정렬 전 판사의 견해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전직 판사로서 법리는 물론 검·경 및 사법부의 생리에 누구보다 밝은 인물이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고 백남기씨 농민의 부검은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의 일부를 옮겨 본다.
"검증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인 검사, 피의자, 변호인 중에서, '피의자'는 경찰이고, '변호인'은 피의자의 변호인으로서 피의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경찰 편일 것입니다. 검사는 어떨까요? 이 사건에 대한 고발사건을 접수하고도 300일이 넘었는데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고 있는 검사가 이 사건에서 '피의자' 쪽에 가까울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부검을 실시할 경우, 피해자인 백남기 선생이나 그 유족의 이익을 대변할 사람이 참여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이루어진 부검의 결과가 진실규명보다는 사실은폐 쪽에 가까울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따라서, 백남기 선생님에 대한 부검은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정렬 전 판사의 지적대로 검찰은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미수 혐의로 고소당한 강신명 전 경찰청장 등에 대한 사건수사에 전혀 힘을 쓰지 않았다. 유족들이 그들을 고발한 시점인 지난해 11월 18일 이후 검찰은 사실상 이 사건을 방치했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에는 그토록 목을 매는 검찰이 정작 해당 사건에는 아무런 수사 의지를 내비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법원의 영장 발부로 부검은 이제 시간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