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I저축은행이 법인채권을 포함한 약 2조원 규모의 소멸시효 만료 채권의 소각을 검토 중이다.(사진은 영화 '돈의 맛'(2012) 가운데 한 장면)
돈의맛(2012)
SBI저축은행이 9700억원 규모의 소멸시효가 만료된 개인채권을 시민단체인 주빌리은행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소각하기로 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법인채권을 포함한 약 2조원 규모의 소멸시효 만료 채권의 소각을 검토 중이다.
비록 9월 29일 열릴 예정이었던 금융감독원의 국정감사에서 SBI저축은행 임진구 대표가 일반 증인으로 신청되면서 정치권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소각결정을 하였다는 비판은 있으나, 원인이야 어찌됐든 이번 결정의 파급력은 생각보다 클 수 있다.
죽은 채권이 좀비채권으로 되살아나소멸시효가 만료된 채권은 채무자가 갚지 않아도 되는 죽은 채권이지만, 소멸시효 만료 후에도 소위 '자연채무' 형태로 채권사가 보유하고 있다가 이를 대부업체 등에 매각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를 매입한 대부업체 등은 법률에 무지한 채무자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진행하거나 일부라도 상환하도록 설득하여 소멸시효를 갱신하여 추심을 하고 있다. 이렇게 죽었다가 되살아난 '좀비채권'은 버젓이 법률적으로 추심가능한 채권이 되어 채무자들에게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추심하거나 매각하는 행위를 자제하도록 행정지도를 해왔으나, 이는 권고일 뿐 법률적 구속력이 없어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더불어 민주당 제윤경 의원실에 따르면 전체 금융권에서 보유한 소멸시효 만료 개인채권은 총 3조 1000억원가량으로, 현재 자산규모 기준으로 국내 저축업계 1위인 SBI저축은행이 보유한 개인채권 원금 총 2조7501원 중 이번에 소각될 9700억 원은 전체 채권의 30%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가계부채 폭탄의 실체
가계부채 1260조 원 시대가 열렸다. 상상하기 힘든 금액인 1260조 원에 대해 좀 더 현실적으로 표현하자면 가구당 부채는 6718만 원, 국민 1인당 부채는 2437만 원인 셈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54조 원이 발생한 가계부채는 급증세를 멈추지 않고 있어 1300조 원을 달성하기가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더불어 민주당 제윤경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올 2분기 174%로 가계소득보다 부채 증가폭이 두 배 이상 더 큰 상태이다.
문제는 가계부채 폭증으로 인해 금융 불균형이 누적되고 가계소비 제약에 이르게 되어 심각한 국가적 내수침체와 경기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더불어 민주당에서는 소액 장기 연체채권에 대한 채무조정과 소각,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의 제3자 양도금지, 기업대출의 연대보증 금지 등에 대한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 없는 대책그럼에도 정부는 가계부채 문제의 본질적인 문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올해 8월 가계부채 대책으로 집단대출 한도와 주택 공급 물량을 조절하고 집단대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으나, 주택 공급 물량을 줄여 오히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결과를 낳은 바 있다.
또한 얼마 전 서민경제의 만능해결사라는 명목으로 서민금융진흥원(구 미소금융중앙재단)을 설립하여 서민대출을 시행하고 있으나, 정부 초기부터 서민정책으로 내놓은 대출정책은 가계부채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명백함에도 또다시 서민대출 지원정책을 내놓은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직면한 가계부채의 문제는 서민들이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대출을 상환할 수 없다는 점이 본질적이다. 과도한 가계부채가 가계 재정을 악화시켜 가처분소득을 확보하지 못하여 파산의 지경에 이르고, 이후에도 극심한 추심 등으로 경제주체로 활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서민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사용하라고 권하는 정책은 가계부채 문제의 본질을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번 SBI저축은행의 소멸시효 만료 채권 소각은 가계부채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결과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부디 정부가 이번 일을 계기로 실질적인 가계부채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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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채권 9700억원 소각, 속을 들여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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