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픽업한 폭스바겐 9인승 승합차생각보다 덩치가 커서 부담스러웠지만 공간 만큼은 넉넉하여 좌석 한 줄을 침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권응상
차는 결국 12시가 다 되어서야 왔다. 예정보다 세 시간이나 늦어졌다. 하지만 스마트한 러시아 청년 세르게이 덕분에 미소지을 수 있었다. 첫 날 맛있는 까샤로 우리를 가분좋게 만들었던 호텔 식당의 뚱보 아줌마 이후 두 번째이다. 이처럼 모스크바는 단 이틀만에 우리를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게 만들었다.
에피소드 아홉. 자동차로 떠나는 '골든링 도시' 여행우여곡절 끝에 우리에게 인도된 승합차는 디젤게이트로 문제가 되고 있는 폭스바겐 9인승이다. 지난해 스페인 이후 다시 1년 만에 수동을 운전하려니, 잠시 긴장되었다. 먼저 클러치를 밟아 보니 끝없이 들어가는 느낌이다. 우리나라에서 10년 이상 수동 운전을 했었지만 이렇게 깊은 클러치는 처음이다. '시동 많이 꺼뜨리겠군.' 출발 시간이 너무 늦어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시동을 건다. 거리로 나서고서야 어제 저녁 택시를 타며 봤던 모스크바 거리의 복잡함과 자동차들의 질주가 떠올랐다. 더 곤혹스러운 것은 공사 때문인지 차선이 없는 곳이 많다는 것이었다. 조심조심 시내를 벗어나 교외로 접어들자 조금 긴장이 풀렸다.
자동차 여행의 백미는 모름지기 먹으며 웃고 떠드는 것이라는 것을 미국 서부 자동차 일주여행으로 터득했던 터다. 먹거리도 준비하고 점심도 먹기 위해 호젓한 마을로 들어갔다. 슈퍼마켓에 들어가서부터는 여사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모양이 못생긴 복숭아와 색깔이 유난히 붉은 사과, 그리고 가장 익숙한 모양의 멜론까지 과일을 잔뜩 담는다. 우리 개구쟁이 셋은 여사들 눈치를 보며 보드카와 맥주를 슬쩍 끼워 넣는다. 차 안에 가득한 먹거리를 보니 마음도 넉넉하다.
점심을 먹으러 들른 그 마을의 유일한 식당은 단체 손님 때문에 자리가 없단다. 어쩔 수 없이 주유소에서 햄버거와 치킨으로 점심을 때운다. 그런데 갓 튀겨낸 프라이드 치킨이 기대를 뛰어넘는 훌륭한 식감이다. 후식으로 과일을 즐기며 이래저래 들뜬 기분으로 한적한 시골 국도를 신나게 달린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경관이 미국과 스페인에서 경험한 풍광과 겹쳐지면서 이야기 꽃을 피우게 만든다. 수다가 무르익으며 자동차 여행의 우쭐한 즐거움이 생겨날 즈음에 차량 정체가 시작되었다. 구글맵에서 예시한 공사구간이다. 금방 빠지겠거니 기다렸지만 풀릴 기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