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한국 노동시장 구조 변동과 젠더불평등의 변화" 강의를 맡은, 김영미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한국여성노동자회
'경비아저씨에겐 15만 원, 청소아줌마에겐 3만 원.'
공지문 한 장이 A아파트 엘리베이터 벽에 떡하니 붙어있었다. 추석 격려금 얘기였다. 아파트 동 대표 회의에서 결정된 금액, 15만 원과 3만 원. 공지문을 본 순간을 회상하며 김영미 교수는 말했다.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그녀는 궁금했다. 공지문의 내용과 같은 '대놓고 임금차별'은 일반 기업, 이를테면 삼성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그렇다면 삼성과 A아파트의 차이는 뭘까? 의문은 질문으로 구체화되었다. 한국 노동시장의 중심부와 주변부에서 젠더불평등은 어떻게 나타날까? 노동시장의 각각의 위치에서 여성들은 어떤 식으로 차별을 경험할까?
신자유주의론과 계급론, 노동시장 변화 설명하기에 불충분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급격히 증가했다.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 현상은 '개인의 성과 차이'이므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계급론자의 시각은 다르다. '전형적인 계급 대 계급의 문제가 전면화 되는 과정'으로 현상을 파악한다.
기존에 한국 노동시장은 일본식 고용관계를 이식하여 대기업(재벌) 대 하청기업 관계가 보편화되고 내부노동시장이 발달하는 등 조정시장경제(Coordinated Market Economy)의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적 유연화로 자유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y)적 요소가 확산되었고, 조정시장경제의 특징과 자유시장경제의 특징이 한국 노동시장에 뒤섞였다. 김영미 교수는 이것을 '생산 체제의 혼종성'이라 설명하며,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노동시장의 '분절성'이라 말한다.
분절성이란 '격차가 크고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다. 계급과 직업이 같은 사람들 사이에도 직장이 대기업인가 중소기업인가, 고용형태가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에 따른 차이가 상당하다. 표면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진행될수록 한국노동시장의 분절성과 경계는 오히려 강해졌다. 불평등의 증가가 '개인의 성과 차이'라고 보는 신자유주의 옹호론은 이 현상에 들어맞지 않는다.
이번엔 반대편 입장을 보자. 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단단한 것은 녹아서 공기 중에 사라질 것이다." 여기서 '단단한 것'이란, 사람을 규범 안에 가둬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해놓았던 봉건적 범주들을 말한다. 마르크스는 시장과 자본주의의 확대가 이 봉건적 범주들을 사라지게 할 것이라 예견했다. 그러나 한국은 예나 지금이나 OECD회원국 중 최악의 남녀 임금격차를 보인다. 고위직에서의 여성 비율이 턱없이 낮은 것도 여전하다. 한국 노동시장의 '단단한 것'은 녹아 사라지지 않았다.
여성이라도 성과만 잘 내면 차별받지 않는다?경제위기 이후 한국 노동시장의 변화는 임금불평등의 증가, 저임금 노동시장의 확대, 높은 젠더불평등의 유지로 간추릴 수 있다. 각각 떼어놓고 보면 이 현상들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지만, 세 가지 현상이 동시에 벌어지는 것은 한국 노동시장의 특징이다.
이 특징은 기술결정론의 시각에서 보면, IT혁명과 컴퓨터 혁명 등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고학력자와 고숙련자의 수요가 높아졌으나 이들의 수가 적어서 임금이 뛰어오른 결과이다. 하지만 김영미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IT, 고숙련 분야의 일자리가 증가하고 있지 않으므로 기술결정론적 설명에 허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신자유주의 확산론의 시각에는 신자유주의 확산으로 인해 노동계급이 몰락한 결과이다. 그러나 이 설명으로는 젠더불평등의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한편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은 '성과만 잘 낸다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을 것이니, 불평등의 증가는 성별과 무관한 현상이라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김영미 교수는 1982년부터 2004년까지 남녀 임금격차와 이에 관한 자료들을 분석하며 답을 얻었다. 이 기간 동안 남녀 임금격차는 전체적으로 줄었다. 그러나 이것은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성취를 이뤄낸 결과가 아니었다. 김영미 교수는 동 시기 '연도별 남성 임금 10분위 대비 여성의 상대적 분포'를 측정,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