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0일, 낙태죄 헌법소원심판을 앞두고 여성단체들이 주축이 된 '임신·출산 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 회원들이"낙태 처벌은 명백한 위헌"이라며 "임신과 출산에 관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서 오늘 글의 논지는, 최근 임신중절을 둘러싼 법 개정에 있다. 일단 현재 임신중절에 관한 형법(제269조, 제270조)은 이렇게 되어 있다.
(모자보건법 14조에 의거해 강간, 근친, 산모의 건강 위협 등으로 합법적이지 않을 경우)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임신중절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임신중절하게 한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불법이므로 한 해에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임신중절은 정식으로 집계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 해에 행해지는 임신중절은 자그마치 20만 건(의료계 추산, 보건복지부 추산은 35만건)으로 추정된다. 현행법은 이 20만 명을 수배해서 전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지 않고, 온 나라의 산부인과 의사를 잡아다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지 않는다.
이렇듯 실상과는 따로 노는 법 사이에서는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불법으로 엄연히 규정되어 있으므로 현실적으로 임신중절이 필요한 20만 명은 시술 후 몸조리를 하면서도, 범법자라는 불안감을 견뎌야 하고,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각 산부인과에서 임의로 정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또, 2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위협에도 사회적인 필요에 의해 이를 매일 시행해야 하는 산부인과 의사의 고충은 말할 것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 첨예한 화두에 대한 정당하고 올바른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고 의료계는 계속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며칠 전 입법 예고된 의료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은 정말 최악이며, 법과 윤리와 사회적인 합의를 둘러싼 우리나라 입법자의 자세를 잘 보여준다. 현행법상 임신중절은 앞서 기술한 형법으로 처벌받는 것 이외에도 '의료인에 대한 비도덕적인 행위'로 자격정지 '1개월'이 주어지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처벌이 너무 약하다고 생각했는지, 이를 자격정지 '1년'으로 늘리는 것이 보건복지부가 발의한 이 법의 골자다. 당연히 대한 산부인과학회는 반발에 나선다. 이미 의사들은 사회적 함의 아래에서, 불법임을 감안하고도 여성들의 선택권을 위해 임신중절을 해 왔다.
임신중절의 대부분은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환자들은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동네 산부인과에서 자기 결정권에 의해 임신중절을 받을 수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는 자기 병원에서 보편적인 의료 기술을 행했을 뿐이고, 불법임을 무릅써야 했을 망정 득이 될 것이 없었다. 여기서 득을 본 것은 고결한 척했던 입법자일 뿐이다.
하지만 자격정지 '1년'이면 (임신중절을 시행한)병원은 무조건 문을 닫아야 한다. 이 괴상한 사회적 세태에 대해서 충분한 대중적 논의를 거쳐 의사들을 범법자 신세에서 풀어주지는 못할 망정, 더욱 콧대를 높이 세워 의사를 범죄자 취급하고, 처벌하겠다는 소리다. 비현실적이며, 현장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처사다. 내 입장에서도 저 입법예고는 그렇게 들린다.
그래서 대한 산부인과학회 회장은 이렇게 발언한다. "이 법이 진짜 입법되면, 정말로 우리는 임신중절 수술을 안 하겠다." 그리고 네티즌의 질타가 쏟아진다. '직업윤리가 없는 의사가 저렇게 무섭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지지하고 임신중절 금지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의료인 처벌에만 반발한다는 증거다.'
회장의 말은 조금 어폐가 있기는 했지만, 절대로 현장에서 생명이 위급한 임신중절 수술을 산부인과 의사가 거부해 환자가 죽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의사가 두고 볼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의사는 정부가 규정한 불법 행위를 함으로써 이미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지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저 말은, 실제로 임신중절이 우리가 1년 동안 자격정지를 받을 수 있고,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는 불법 행위라면, 진짜로 너희들 말대로 임신중절을 거부하고, 법을 수호해 보겠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에 반발하는 네티즌들은 그들이 말하는 '불법'에 동조하는 꼴이고, 결국 원인은 잘 이해하지 못한 채 입법자의 장난에 놀아나는 꼴이다.
한 해 20만명 임신중절하는데... 사회적 고민 없는 입법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