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www.un.org/sg/en/content/travels) 유엔이 공개하지 않은 비공식 출장 일수, 아예 방문하지 않은 국가는 포함되지 않았다. 유엔 본부는 미국 뉴욕에 있다. 그럼에도 미국 출장 일수가 계산된 것은 워싱턴 D.C. 등 미국내 출장이 잦았기 때문이다.
하지율
시리아를 찾으셨는가? 수고하셨다. 이처럼 시리아를 찾으려면 스크롤을 한참 내려 국가별 평균 출장 10.21일보다 한참 아래까지 뒤져야 한다. 반 총장이 임기를 통틀어 시리아에 공식적으로 단 '2일'만 방문했기 때문이다. 이조차 시리아 내전이 본격 발발한 2기가 아닌 1기 임기 중인 2007년 4월, 2009년 1월 하루씩 방문이다. 다만 지난 3월 시리아 난민을 대거 수용하는 레바논에 출장을 가 관대함의 모범 사례라 칭찬했다는 기록이 있다.
동행한 세계은행 김용 총재가 1억 달러(약 1170억 원)의 지원금을 배정했지만 시리아 내전으로 인접 국가 5개국이 입는 경제적 손실 350억 달러(약 41조 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유엔 회원국들의 지원을 더 이끌어내려면 강한 어필이 필요했다. 2015년 4월 7.9 규모의 강진이 일어난 네팔은 어땠을까? 역시 2일이고 2008년이다. 지진과 아무 상관이 없다. 물론 반 총장이 지진 복구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는 식의 단정은 곤란하다.
그는 2015년 5월 유엔 총회에서 회원국들에게 네팔의 피해 현황을 보고한 뒤 긴급 지원금 모금 참여를 호소했다. 총회는 네팔 지원을 강화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반 총장은 사무총장으로서 해야 할 '통상적인 노력'은 했다. 다만 상황이 심각하면 네팔로 출장을 길게 가 좀 더 복구 속도가 빨라지도록 국제 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유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은 점은 다소 의아스럽다. 그래도 네팔은 시리아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상임이사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중동이 아니라 회원국들이 눈치를 덜 봐도 됐고 전쟁이 지속되고 난민이 속출하는 것도 아니라 지원이 비교적 빨리 추진됐기 때문이다. 반 총장이 '도덕적 권위'를 무기로 네팔보다는 시리아에 자주 방문해 국제 사회에 지원을 호소했어야 온당했겠지만 그는 어느 쪽도 방문하지 않았다. 한편 2010년 대지진이 일어난 아이티는 어땠을까? 상황이 네팔보다 훨씬 심각해 22만 명이 사망했다.
이때는 반 총장도 1월, 3월 하루씩 당일 치기로 방문을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이티에서 1만 명의 콜레라 사망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콜레라균은 2010년 네팔에서 아이티로 파견된 유엔 평화 유지군이 옮겨왔으리란 해석이 정설이다. 이것은 반 총장 임기 최악의 오점 중 하나로 꼽힌다. 반 총장이 아이티에 머문 기간은 지난 15일 당일 치기까지(아직 유엔 누리집에는 등재가 안 된 걸로 보인다) 합산해 9일이다.
평균보다 낮다. 지진 피해 복구가 끝나지도 않은 아이티는 이달 초 허리케인 '매튜'까지 닥쳤다. 긴급 지원금 1억 2000만 달러 중 12%만 모금된 상황이다. 반 총장이 현재까지 155개국에 1594일 동안 출장을 떠났다. 사무총장 임기 10년의 약 43.67%다. 이 1594일 중 5개국 밖에 안 되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머문 일수가 303일 즉 약 19%다.
반면에 유엔의 주 무대이자 빈곤 국가들이 있는 아프리카는 42개국(아예 방문하지 않은 곳도 있다)을 방문해 254일을 머물렀다. 평균 6일 정도다. 전 세계 평균 10.21일보다도 낮을뿐더러 이 역시 에티오피아, 이집트, 케냐 등 특정 국가에만 편중된 경향이 있었다. 쉽게 말해, 아프리카 국가들은 임기 중 거의 '한 번 찍고 오는' 투어 수준의 방문이 대부분이었다는 것.
물론 단순히 분쟁, 재난, 빈곤 국가들에 대한 출장 일수가 적다고 반 총장이 몸을 사렸다고 혹평할 수는 없다. 국제회의들이 제1세계 국가들에서 자주 열린다는 점도 참작할만하다. 또한 아무리 유엔 사무총장일지라도 신체적으로는 70대 노인이라 직접 가서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고 유엔의 실질적 권한을 상임이사국들이 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거듭 강조하건대 사무총장직은 어쨌든 '도덕적 권위'를 발휘할 수 있는 자리다.
반 총장은 자신의 관심을 좀 더 제3세계 국가들에게 분배했어야 했다. 전 세계인들의 인간성을 흔들어 깨우고 경종을 울리는 건 원래 시리아 꼬마 아일란, 옴란, 아야 등이 아닌 반 총장의 역할이다. "우리가 몸을 사리며 안전을 추구할 때마다 세계는 처참한 위험에 치닫는다"는 교훈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외신에게 정작 도움이 필요한 곳 대신 생색낼 만한 곳과 명예박사 학위나 주는 곳만 다닌다는 모욕을 들을 일은 없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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