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투쟁에 나선 철도 해고노동자 서재열씨철도노조 상근간부로 활동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김병준
철도노조 파업 투쟁 38일차를 맞이하는 11월 3일. 철도청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서재열씨를 만났다. 서재열씨는 1986년 철도청에 입사 후 철도 민주노조 건설 투쟁을 하면서 노조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이후 1994년 파업 투쟁 건으로 대전에서 강원도 정선으로 전출되어 가족과 떨어져 강원도에서 일하다가, 2003년 파업 때 결국 해고당했다고 한다.
"2001년 정부의 철도민영화 추진은 공공철도를 지향하는 철도노동자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였고, 철도청(현 철도공사)와 철도노조는 2003년 4월20일 철도 민영화를 철회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합의서를 만들었어요. 특히 '열차 안전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지보수 기능 등은 운영부문과 통합하는.....' 합의를 작성하였고, 향후 철도 계획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추진하는 것으로 합의하였으나, 철도청은 일방적으로 유지보수 기능에 대한 분리를 추진하게 되면서 철도노조의 철도 안전지키기 파업이 시작된 거죠."
그의 말에 따르면 2003년 파업은 철도민영화 철회를 약속했던 정부와 공사측이 일방적으로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민영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불붙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우선하는 공공철도 건설 관련 합의를 하였으나 이행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안전업무를 분리하려는 정부와 철도청에 대한 철도 현장의 분노가 파업으로 이어졌죠."2003년 6월 당시 철도노조 중앙에서 간부로 일하고 있었던 그는 그렇게 파업에 참여했다. 철도노조의 파업 투쟁은 지금도 그렇고, 이전에도 그렇고 항상 국민의 안전과 철도의 사회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다.
"파업 시작한 지 하루만에 대국민 담화문이 발표되고, 경찰들이 들이닥쳤어요. 당시 나는 고려대 조치원캠퍼스 있었는데 경찰들 침탈에 주욱 밀려서 기관사들은 산개투쟁으로 전환하고, 우리는 민주노총 대전본부에서 모여서 투쟁을 이어나갔어요."과거를 회상하는 그의 표정에는 괴로움이나 아쉬움이 아닌 자긍심이 엿보였다. 자신들의 투쟁이 틀리지 않았음을, 철도 민영화가 재앙이 될 것임을 이제는 모든 시민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긍심이 그를 뿌듯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듯하다.
"이후에 철도노조에서 해고노동자들 대한 구호 사업이 진행되었고 지금은 철도노조 상근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