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 저능, 무지 그리하야 우울

[살며 사랑하며 30]

등록 2016.11.07 12:11수정 2016.11.07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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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해전 가을 어느날, 사무실이 뒤숭숭했습니다.


"얘기 들으셨어요?  L 선생이 아직 출근을 안했대요."
"…. 지금…, 10시가 넘었는데?"
"책상이 깨끗이 치워져 있다는데요."
"!!!"

핸드폰도 꺼진 상태였고 혼자 자취하는터라 연락할 길이 없었습니다. 아무일 없이 수업을 빼먹을 사람도 아닌 데다가 말끔히 정돈된 책상에 다들 불안해 했습니다. 10시가 넘자 동료들이 일하다 말고 바로 집을 찾아갔습니다. 차는 집 주변에 있는데 옥탑방 출입문은 잠겨있고 결국 119 소방대가 와서 문을 열었는데….

나중에 경찰이 핸드폰을 살펴보니 한달이 넘도록 개인적인 통화나 문자가 한 건도 없었답니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심한 우울을 겪고 있었답니다. 그해 모두들 힘들어 했습니다.

이 '우울'은 어느 사회나 전반에 퍼져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크든 작든 겪기 때문이지요. 이 호랑이에게 물리면 눈빛이 달라집니다. 세상이 우울해보이니까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은 것이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기도 하고, 사회와 타인으로부터 심한 고립감을 느끼면서 자기세계 안으로 움츠려들지요.

우울은 생각보다 쉽게 찾아옵니다. 사업이 잘 안되거나 뜻하지 않게 실직하게 되거나 혹은 여러가지 이유로 처음엔 화가 나다가 점점 주눅이 들면서 자신감이 없어지고, 그것이 길어지면 두려움이 커지지요. 어느 순간 세상이 온통 잿빛 하늘로 변합니다.


우울은 일차적으로 자기 내부로부터의 고립입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그 우울로 가는 과정에서 두려움을 겪습니다. 그 두려움의 시작은 무엇인가 소중하다고 여긴 것을 잃으면서 옵니다. 내가 가치를 부여한 소중한 것이 사라져버릴 때 삶의 의미도 함께 사라져버립니다. 희망이 사라진 거지요.

그러나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은 대단히 개인적이며, 일면 환상적일 수 있습니다.


지난 추석 명절에 이승엽 선수가 600호 홈런을 달성했습니다. 이승엽 선수가 친 공이 담장을 넘어가는 순간 아나운서의 흥분된 멘트가 쏟아집니다.

"한국 프로야구사에 길이 빛날 기념비적 600호 홈런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의미는 600호 홈런볼에도 부여되지요. 때로 그런 공들이 엄청난 가격이 매겨지기도 합니다. 그 홈런볼은 조금 전까지 마트에 가면 6000원에 살수 있던 흔한 야구공이었는데 말입니다.

이 선수에게 야구는 삶 자체일 수 있겠습니다. 이 선수가 어느날 갑자기 부상을 당해 더이상 야구를 할수 없게 된다면 심한 우울에 시달릴 수 있지요. 삶의 의미를 잊어버리니까요.

우울에서 벗어나는 길은 지극히 소중히 여겼던 그것 외에도 다른 것에서 또한 그 소중함들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 선수가 야구를 하기 전에는 무엇이었나요. 학생이었나요. 이 선수에게 야구 인생만큼 그 학창시절은 중요하지 않은 걸가요. 만일 이 선수가 은퇴 후 동네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라면집을 운영하면 그것 역시 야구인생 만큼 소중하리라 봅니다. 자신이나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문제만 없다면 말입니다.

살면서 우울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식일 수 있지요, 사업가는 그 사업일 것입니다. 지휘자에게는 음악일 것입니다. 많은 아버지들에게는 내 가족이기도 합니다. 정치인들은 권력인가요. 부자에게는 가진 재산일 수 있고, 연인들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겠지요.

모두에게 자신의 '그것'이 소중한 것처럼 저마다 소중한 '그것'의 경중을 따질 수 없습니다. 부자의 재산만큼 연인들의 짝이 소중하지요. 그 연인의 짝만큼 지휘자의 음악이 소중합니다. 그 음악만큼 기업가의 사업이 소중합니다. 어느 누가 내것이 저사람의 그것보다 더 소중하다고 할수 있을가요. 모두가 동등가치의 소중함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모두에게 그토록 소중했던 가치들을 일거에 잊어버린 듯한 상실감을 겪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지난한 시절을 겪어오면서도 이 나라를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서로 달라도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제 어머니는 선거때면 죽으나 사나 지금의 여당만 찍으셨습니다. 그래도 그분들이 저희 어머니요, 아버지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서로 '다름'이 아니라 법과 상식을 저버린 정도가 중고생들마저 '아연실색'케 하는지라 거리로 뛰어나오게 하고 있습니다. 그 소중한 가치를 잃은 상실감이 국민들로하여금 분노를 넘어 심각한 우울에 시달리게 합니다. 

그 우울을 벗어나려고  거리마다 사람들로 넘쳐나는데, 그 자리에 앉아 무능함을 넘어 할일 안할일 구분 못하는 저능함으로 나라를 벼랑끝으로 몰아가는 이 무지함을 어찌하면 좋은가!

… 우울합니다.

희망 큰 상실감을 겪을 때 우울에 빠지기 쉽습니다. 삶의 작은 것에서 또다른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그 우울에서 벗어나는 길일 것입니다.
희망큰 상실감을 겪을 때 우울에 빠지기 쉽습니다. 삶의 작은 것에서 또다른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그 우울에서 벗어나는 길일 것입니다. 전경일

#우울 #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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