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리 라스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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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승 라스푸틴(1872~1916년)은 사정이 다르다. 그는 신돈이나 보우처럼 시대를 앞당기는 역할을 한 게 아니라 자기 나라인 러시아 제국의 멸망을 재촉하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자신이 요승이라 불린다 해도 별다른 항변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라스푸틴이 역사에 등장한 일의 기원은 러시아가 아니라 영국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두 차례에 걸친 청나라와의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 이 영국이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 최강이 되도록 만든 주역,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년)의 건강 문제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한다.
빅토리아는 혈우병 보인자(保因者)였다. 혈우병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어도 그것이 나타날 수 있는 유전적 요소를 몸 안에 갖고 있었던 사람이다. 조그만 상처에도 피가 잘 나고 한 번 피가 나면 잘 멎지 않는 그 병이 몸속에 잠재적으로 숨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같은 특성이 라스푸틴의 등장에 기여했다.
빅토리아의 유전적 특성은 외손녀 알렉산드라를 통해, 알렉산드라의 아들이자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아들인 알렉세이 황태자에게 전해졌다. 알렉세이의 경우에는, 혈우병 보인자가 아니라 혈우병 환자였다.
모계 쪽 유전병인 혈우병이 황제가 될 자기 아들한테 나타났으니, 러시아 황후 알렉산드라는 미안하고 걱정스럽고 불안한 마음을 항상 떨칠 수 없었다. 당시 의학계는 이 병에 대해 뚜렷한 치료법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황후의 안타까움은 한층 더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1907년 알렉산드라 황후 앞에 등장한 인물이 라스푸틴이라는 신비주의 종교의 승려였다. 그는 황태자의 혈우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서 자신감을 표출했다. 신기하게도, 라스푸틴이 손만 대면 황태자의 혈우병 증상이 그때 당장에는 좋아지곤 했다.
그래서 황후 입장에서는, 아들의 병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라스푸틴을 곁에 둘 수밖에 없었다. 니콜라이 2세 역시 황제이기에 앞서 아버지였으므로, 아들을 위해서라도 라스푸틴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황후와 황제 이전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마음으로 라스푸틴을 가까이하고 총애했다.
그것을 기반으로 비선실세로 떠오른 라스푸틴은 권력 사용을 절제하지 못하고 국정 농단의 원흉으로 부각되었다. 그가 일으킨 최대 문제점은, 인사문제에 개입하고 돈을 축적하고 세력을 형성하고 성적 문란을 일으킨다는 점이 아니었다. 물론 이런 것도 중요한 악행이었지만, 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라스푸틴으로 인해 황제가 백성 및 신하들로부터 고립되었다는 점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태민은 (대통령이 되기 전) 박근혜에게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살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자기 말만 믿는 사람이 되도록 했던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라스푸틴도 황제 부부를 자기 말만 듣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었다. 니콜라이 2세가 이른바 불통 정치를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불통 정치의 폐해는 러시아가 참전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 '진가'를 발휘했다. 세계대전 급의 전쟁에 참전했으니 국민적 역량을 총동원해도 시원찮을 텐데, 니콜라이 2세는 국민적 단결을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저해하는 일을 했다. 그 와중에도 소수민족과 소수 종파를 억압함으로써 국민적 단결을 스스로 저해했던 것이다.
이뿐 아니었다. 니콜라이 2세의 불통 정치는 정부나 정치권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국회인 두마의 다수파를 끌어안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정부 내의 다수파도 포용하지 못했다. 여기다가 라스푸틴이 보여주는 신의 은총만 확신한 나머지, 전쟁을 직접 이끌겠다며 지휘관들에게 간섭을 일삼다가 군부로부터도 반감을 사고 말았다.
황제가 이런 식이었으니, 러시아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음은 물론이고 사회 기층부에서 밀고 올라오는 혁명의 열기도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에는 황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황제를 이렇게 만든 라스푸틴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있었다.
라스푸틴을 놔두고는 러시아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일부 귀족들의 궐기에 의해 라스푸틴은 1916년에 암살을 당했다. 하지만, 라스푸틴의 수중에서 놀아난 러시아는 이미 침몰하는 배였다. 결국 1917년 러시아제국은 혁명과 함께 역사 속으로 침몰하고 말았다. 이렇게, 라스푸틴은 나라를 망가뜨린 '경국지승(僧)'이었다. 그래서 최태민 부류의 요승으로 불려도 결코 억울하지 않을 사람이다.
라스푸틴은 러시아 황실과 러시아 제국을 파멸로 몰아넣었다. 최태민과 최순실이 미칠 악영향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지만, 라스푸틴과 두 부녀가 '동족'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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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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