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로드
김문호
2014년 눈빛출판사에서 오롯한 사진집으로 다시 나온 <온더로드> 16쪽의 사진은 질주하지만 외롭게 남겨진 현대 문명과 그 안의 인간이 안고 있는 고뇌를 말하려는 관념의 이미지가 된다. 사진은 결국 인간과 문명이 행하는 '질주에 대한 허망한 보고서'이기에 길과 차량 그리고 지하철 장면이 많이 나온다. 가방을 들고 선 채 지하철을 기다리는 신사들을 찍은 사진은 (p. 28) 현대 문명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일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상반신이 제거된, 모두 다 하나같이 틀에 짜인 옷을 입고 가방을 든 채 지하철을 기다리는 군상은 홀로 우둔할 수 없는 그래서 홀로 자유로울 수 없는 속박의 문명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 페이지에 바로 이어 나오는 지하철 전동차를 기다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장면을 찍은 사진은 (p. 30)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기는커녕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 듯 하루하루 따분한 삶을 간신히 이어가는, 어찌 보면 죽어가는 소시민의 모습으로 보인다.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질주에 대한 허망함을 말하기에 충분한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결국 <온더로드>는 사건을 기억하고 보관하기 위해 기록하는 것이 아닌 일정한 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기록하는, 사유와 재사유의 장(場)으로서의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이는 사진가 김문호의 사유 세계가 넓고 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다큐멘터리 사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이미지를 만드는 결정적 순간과 그것이 만드는 미학적 구도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기는 정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단순한 기록이 아닌 기억과 사유를 위한 매체로 삼고자 하는 것은 결국 사진 언어의 문제가 된다. 도시의 풍경이라는 게 하나의 주제를 놓고 볼 때 결국 어떤 이미지로 나타나더라도 기록적 차원에서는 대부분이 거기서 거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큐 사진을 찍는 이유는 뭔가? 그것은 그 이유가 사실의 기록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유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떤 사실은 존재하지만, 그 사실이 말하지 못하거나 침묵 속에 묻혀 있던 또 다른 사실(들)을 보여 주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이다.
적어도 그러한 이유에서라면, 사진가 김문호의 다큐멘터리 속에서라면, 풍경을 구성하는 모든 장면은 전혀 동어반복이지 않다. 기록이 아닌 개인에 따라 만들어지는 기억의 샘물을 긷거나 사유의 밭을 일궈내는 차원에서 모든 사진은 각기 다른 사유를 구성할 수 있다.
2. 인간에 대한 응시사진가 김문호는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사건이 아닌 사람들, 그것도 주로 이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작은 이들에 대해서 했다. 그가 대학 때 기독교 신학을 전공했고,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스승이 장기수 노촌 이구영과 무위당 장일순이고 그가 처음으로 사진 작업을 함께 했던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사진가 최민식이라면 그의 초창기 관심과 태도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진가 김문호가 한 이 땅의 소외된 이들에 대한 사진 기록은 그들에 대한 응시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소외당한 이들에 대한 기록은 2003년에 출판된 <눈 밖에 나다>와 2006년의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이다. 두 권 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여 다른 동료 사진가들과 함께 편찬한 글이 함께 있는 사진 책이다. 김문호는 <눈 밖에 나다>에서 <People on the Border>라는 제목으로 열여섯 장의 작품을 실었다. 모두 한국 땅에 거주하는 이주민들 가족을 초상으로 찍은 사진들이다. 대부분은 국제결혼한 사람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가족들도 몇 있다.
사진가 김문호가 관심을 갖는 것은 국제결혼 여부가 아니고 즉 서로 다른 피부색과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이 같이 사는 모습 특히 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의 생김새가 주는 시각적 자극성이 아니고, 그런 가족이든 그렇지 않은 가족이든, 이 땅에 엄연히 사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특별히 사진의 시각성을 강조하지도 그들의 삶에 대한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아내지도 않는다. 평범한 일상의 모습 그대로를 담았다.
아우구스트 잔더 이후 초상 사진은 그 단독으로 대상이 어떠한 사회성을 가지고 있고, 사진가가 그 사회성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찍는 장르가 되었고, 사진가 김문호 또한 그 방법을 충실히 따랐다. 그래서 근대 초상 사진이 등장하기 이전 시기에 초상화가 담당했던 역할 가운데 하나인 인물에 대한 아우라 만들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차라리 어떻게 해서든 아우라를 제거하고 그 대신 전혀 아우라를 받을 수 없는 그들의 사회경제적 맥락을 집어넣으려는 시도를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