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막의 나침반이다나 없이는 사막을 건널 수 없다
김경수
원래 내 머리에는 멋진 왕관이 있었다. 옛날에 부처님은 나에게 가장 작은 고환을 준 대신 가장 아름다운 뿔을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슴이 찾아와 서역에서 동물잔치가 있다며 내 뿔을 빌려갔다.
잔치에서 만난 동물들이 사슴의 뿔을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자 사슴의 마음이 변했다. 다음 날 돌려주기로 했던 강가에서 매일 기다렸지만 사슴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사슴은 멋진 내 뿔을 갖게 되었고, 뿔을 잃은 나는 지금도 물을 한번 마시고 먼 산을 쳐다보기도 하고, 이쪽저쪽 두리번거리는 습성이 생겼다.
아주 옛날 내가 사는 사막은 공룡들의 놀이터였다. 잽싸게 달아다니는 설치류나 갑옷으로 무장한 느릿한 갑각류에 비하면 나는 사막의 공룡이다. 공룡은 멸종했지만 난 이 척박한 곳에서 살아남은 최고의 서바이버다.
이 척박한 땅에서 나는 생존을 위해 가시덤불과 씨앗 그리고 동물의 뼈와 가죽까지 생명체의 흔적은 모두 먹어치운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해진 것이다. 비록 내 멋진 왕관을 잃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