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5일 오후 서울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예장목회자 시국기도회에서 '분노할 때와 개혁할 때'란 제목으로 주제 강연을 했다.
지유석
서 명예교수는 선친의 항일·반공정신을 이어 나갔다. 그 연장 선상에서 유신독재와 신군부 독재에 맞서는 데 헌신해왔고, 통일운동에도 앞장섰다. 1988년 서울 연동교회에서 열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회에서 선포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의 주역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핍박도 감수해야 했다. 신군부는 1980년 몸담고 있던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직에서 해직했다. 서 명예교수는 다시금 시국선언의 자리에 서게 된 데 개탄스러워 했다.
"내가 이러려고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었습니까? 촛불 광장에서 부르짖는 우리 민중들의 소리입니다. 내가 이 나라가 이 꼴이 되는 걸 보려고 이렇게 오래 살았습니까? 나는 1987년 6월, 29년 전 새문안 교회에 모인 우리 목사님들 앞에서 전두환은 물러가고, 유신헌법을 철폐하고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는 개헌을 하라고 주장했습니다. 나는 다시는 우리 목사님들이 비상시국기도회를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 살아생전에 대통령을 탄핵하고 하야시켜야 한다는 설교나 연설은 두 번 다시 안 해도 되고, 안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지난 목요일인 12월 1일, 바로 이 자리에서 한국 기독교 민주화운동 기념재단을 결성했습니다. 우리가 이러려고 1970년대 민청학련 사건으로 몇백 명의 학생들이 재판을 받고 감옥생활을 했는가? 눈물을 흘리면서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반공의 이름으로 이런 만행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많은 학생들이 남산에서, 보안사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하고 물탱크에 처박혀서 폭력과 압제와 독재의 더러운 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매를 맞고 피를 흘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까? 우리의 믿음의 조상 함석헌 선생과 서남동 목사, 이우정 선생 등은 1975년 3월1일 명동 성당에서 유신 정권을 규탄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부르짖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이 어른들이 그 많은 고초를 당했습니다. 그 아픔과 고초의 대가가 오늘의 박근혜 게이트입니까?"유신 독재 반대는 곧 공산 독재 반대 김대중·노무현 시기를 제외한 역대 정권들은 어려움에 처할 때 마다 국민들의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해 국면전환을 시도해왔다. 이런 행태는 박근혜 정권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남긴 비망록에서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세월호특별법 마련과 그에 따른 진상조사위원회 출범을 요구하던 시민단체들을 '좌익'으로 낙인 찍은 정황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에 맞서 서 명예교수는 '참된 반공'의 가치를 역설했다. 그가 말한 참된 반공은 '자유와 정의의 구현'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