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특파원.
구영식
7일 오후 4시 서울 광화문의 오래된 카페 '봄'.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을 지냈던 다니엘 튜더(34)는 만나자마자 신이 난 표정으로 기자에게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그 동영상에는 광주 시민들이 플라스틱 '바가지'를 깨며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퍼포먼스가 담겨 있었다.
"광주 사람들은 다른 지역보다 시위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어요. 서울보다 작은 도시지만 좀더 짜릿하고 맵게 말이죠. 플라스틱 바가지를 깨는 퍼포먼스는 정말 창의적이었어요."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아래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그는 "촛불집회는 모든 면에서 아름다웠다"라고 촌평했다. 경이로움, 감동, 부러움 등의 감정이 묻어나는 평가다. 그는 "평화로운 저항이 너무나 아름다웠다"라고도 했다.
"한국 친구들은 최순실씨 때문에 계속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말해요. 그런데 촛불시위를 보니까 부끄러워하거나 창피해할 것이 아니라 자랑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박근혜 정부는 최순실씨가 지배했다... 너무 비이성적"다니엘 튜더는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후 불연속적이지만 7년여 간 한국에 거주했고, 지금도 수시로 영국과 한국을 오가고 있다. 특히 한국사회에 밀착해 한국의 정치와 경제, 문화 등을 꼼꼼하고 예리하게 관찰해왔다.
그러한 관찰은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2013년),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2015년) 출간으로 이어졌다. 언론(<중앙일보>, <중앙선데이>)에 기고한 칼럼들도 호평을 받았다. 그는 "나는 '우아한' 영미권 저널리스트가 되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라고 말하기도 했다(<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그는 7일과 탄핵안이 가결된 9일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국 물정을 모르는 일부 외신기자들은 '모든 한국 대통령들이 임기 말에 이런 스캔들을 겪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니다'고 했지만 한국에 오래 산 외신기자들은 '이것은 다르다,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라고 했다"라며 "제3자의 처지에서 보면 최순실 게이트는 엄청난 비리사건이고 당황스러운 사건이다"라고 지적했다.
"전직 대통령 때에도 비리사건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런 정도로 비이성적인 비리는 없었죠. 다른 대통령들은 자신들이 정부를 지배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최순실씨가 지배했어요.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나 김기춘씨에게 권력을 밀어주고 자신은 꼭두각시였죠. 박 대통령이 뭐 하는지는 모르고 퍼블릭 페이스(public face, 공식 발표)만 해요. 너무 비이성적이고 이상해요."
그는 "그동안 한국 우파들은 국가에 집착해왔고, 국가를 해외에 자랑해왔다"라며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 이미지를 파괴시켰고, 결국 한국의 우파들도 박 대통령을 외면하게 됐다"라고 꼬집었다. "다시 투표한다면 박 대통령이 얻을 표는 3-4%에 불과할 것이다"라고도 했다.
"박 대통령은 박정희 혈통 숭배로 유력 정치인이 됐고, 대선주자에 이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어요. 2012년 대선 당시 TV토론을 보니까 말도 잘하지 못했고, 아는 것도 부족했고, 이슈를 제대로 알지 못했어요. 하지만 선거에서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중요한 것은 '박정희'였어요."그는 "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광화문에 가서 나이 많은 분들이 그의 당선을 축하하는 모습을 봤는데 이들은 '박근혜'가 아니라 '박정희'를 생각하고 있었다"라며 "박 대통령을 '박정희의 살아있는 상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제가 무속을 믿지 않지만 첫 번째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무당을 인터뷰하다 보니 무당과 무속을 존경하게 됐다"라며 "그런데 최순실 사태로 무당들의 명예가 파괴돼 안타깝다"라고 꼬집었다.
"해외언론에서는 비선실세문제보다는 샤머니즘 보도가 많이 나왔어요. '한국정부는 샤머니즘이 지배한 정부이고, 비아그라 문제도 있었다'는 식이에요. 해외언론들이 여러 가지 엽기적인 서브 스캔들(sub scandal)에 집착하다 보니 그런 것인데 문득 무당들이 불쌍해졌어요."